복잡하고 활기찼던 그랜드 바자르에서의 미로 탐험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 15명의 일행은 이스탄불의 또 다른 숨겨진 매력을 찾아 발걸음을 옮깁니다. 쉼 없이 달려온 튀르키예 정통 버스 일주 패키지 일정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유적지를 걷고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여행의 피로가 조금씩 몸에 쌓일 즈음, 복잡한 도심의 소음을 벗어나 완벽한 평온함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절실해지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젖줄인 금각만(골든혼)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 '피에르 로티 언덕(Pierre Loti Hill)'에서의 로맨틱한 오후를 소개합니다.

1. 에윕(Eyüp) 지구의 성스러운 공기와 케이블카 탑승

피에르 로티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탄불 구시가지 북서쪽 끝에 위치한 '에윕(Eyüp)' 지구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곳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곁을 지켰던 든든한 동반자, 아부 아이윱 알 안사리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매우 신성하게 여겨지는 지역입니다. 덕분에 이스탄불의 다른 시끌벅적한 관광지들과는 사뭇 다른, 엄숙하고 차분한 공기가 도시 전체에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덕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숲속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거나 케이블카(텔레페릭)를 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15명의 손님들은 하루 종일 넓은 시장 바닥을 걷느라 지친 다리를 쉬게 할 겸, 공중에 매달려 탁 트인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케이블카에 탑승했습니다. 아담한 케이블카가 덜컹이며 천천히 고도를 높이자, 발아래로는 오래된 이슬람 공동묘지의 하얀 비석들이 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자리 잡은 고즈넉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죽음의 공간인 묘지와 삶의 공간인 마을이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져 공존하는 튀르키예 특유의 장례 문화에 대해 일행들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케이블카는 언덕 정상에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2. 사랑과 낭만이 깃든 이름, 피에르 로티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 쪽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아름다운 야외 카페들이 절벽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습니다. 뷰가 가장 좋은 명당자리에 우리 15명의 일행이 모두 함께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을 붙여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습니다.

[팩트체크] 프랑스 소설가의 이름을 딴 이스탄불의 언덕 그런데 왜 튀르키예 이스탄불 한복판에 있는 언덕에 뜬금없이 프랑스식 이름이 붙었을까요? '피에르 로티'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해군 장교이자 저명한 소설가였던 쥘리앵 비오(Julien Viaud)의 필명입니다. 그는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튀르키예의 이국적인 문화와 이스탄불의 몽환적인 매력에 흠뻑 빠졌고, 매일같이 이 언덕에 올라와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사색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그가 이곳에서 집필한 소설 '아지야데(Aziyadé)'는 튀르키예 여인과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어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튀르키예인들은 자국을 이토록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서양에 알린 이 이방인 작가를 기리기 위해, 그가 즐겨 찾던 단골 카페가 있는 이 언덕 전체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골든혼(터키어로는 할리치)의 일몰

3. 황금빛으로 물드는 금각만과 튤립 잔의 '차이'

자리에 앉아 난간 너머로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자, 왜 피에르 로티가 매일 이곳을 찾아와 영감을 얻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발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좁고 긴 바다, 바로 '금각만(Golden Horn, 할리치)'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잔잔하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팩트체크] 이스탄불의 젖줄, 금각만(Golden Horn)의 비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갈라져 나와 이스탄불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완벽하게 가르는 이 깊숙하고 후미진 바다는, 그 지형의 모양이 사슴의 뿔을 닮았다고 하여 '뿔(Horn)'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해 질 녘이 되면 수면에 비치는 붉은 석양이 바다 전체를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인다고 하여 '금각만(Golden Horn)'이라는 아름답고도 직관적인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수심이 깊고 파도가 잔잔하여 고대 비잔틴 제국 시절부터 완벽한 천연 항구 역할을 수행해 온, 이스탄불의 부와 번영을 이끌었던 핵심적인 지형입니다.

절벽 끝에 앉아 풍경에 취해있는 우리 팀원들 앞으로, 튀르키예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허리가 잘록한 튤립 모양의 유리잔에 담긴 붉은 홍차 '차이(Çay)'가 배달되었습니다. 달콤한 각설탕을 하나 톡 떨어뜨려 작은 쇠스푼으로 젓는 챙그랑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언덕 위를 가득 채웠습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머금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을 눈에 담으니, 지난 8박 10일간 아나톨리아 내륙을 누비던 험난했던 대장정의 피로가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마침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이스탄불 시내의 수많은 모스크에서 일제히 '에잔(Ezan, 이슬람의 예배 시각을 알리는 소리)'이 신비롭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국적인 기도 소리와 함께 금각만 너머로 붉게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하던 15명의 손님들은, 서로의 어깨를 기댄 채 말없이 이 완벽한 순간의 감동을 공유했습니다.

4. 16편을 마무리하며

화려한 오스만 제국의 궁전이나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모스크처럼 압도적인 볼거리는 없지만, 피에르 로티 언덕이 주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위로는 기나긴 패키지여행의 막바지 감상을 정리하기에 가장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던 15명 우리 팀원들의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