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람선 탑승을 마치고, 우리 15명의 일행은 이스탄불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삶의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패키지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단연 현지의 활기찬 재래시장을 직접 걸어보는 것이죠. 오늘은 이스탄불 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실내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의 미로 같은 골목길 탐험기를 들려드립니다.
1. 4천 개의 상점이 얽힌 거대한 미로, 그랜드 바자르 입성
전용 버스에서 내려 구시가지의 복잡한 거리를 걷다 보면, 거대한 아치형 돌문 위로 '카팔르차르쉬(Kapalıçarşı)'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튀르키예어로 '지붕이 있는 시장'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그랜드 바자르의 정식 명칭입니다. 무거운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현대적인 이스탄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돔형 통로 양옆으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귀금속 상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모자이크 램프, 수작업으로 촘촘하게 짜낸 페르시아 양탄자, 그리고 다채로운 색감의 향신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시장 안을 가득 채운 은은한 장미 향과 알싸한 계피 향이 후각을 자극하며, 마치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던 중세 아라비안나이트의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인솔자로서 이곳에 올 때마다 손님들께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당부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절대 개인 행동을 하지 말고, 구경하더라도 들어왔던 게이트(문)의 번호를 반드시 외워두라"는 것입니다. 골목이 무려 60여 개나 되고 상점이 4,000개가 넘기 때문에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방향 감각을 잃고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우리 15명의 손님들도 처음엔 그 엄청난 규모와 인파에 바짝 긴장하셨지만, 이내 눈부시게 반짝이는 터키식 소품들에 매료되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셨습니다.
2. 현지 상인들과의 유쾌한 밀당, 흥정의 기술
그랜드 바자르의 진짜 재미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 그 자체보다, 현지 상인들과 주고받는 '흥정'에 있습니다. 이곳의 상점들은 대부분 정찰제가 아니며, 상인이 처음 부르는 게 값인 경우가 많습니다.
[팩트체크] 그랜드 바자르 쇼핑 노하우와 바가지 피하는 법 그랜드 바자르는 전 세계 관광객이 매일 수십만 명씩 모이는 곳인 만큼 초기 부르는 가격(호가)이 현지 시세 대비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고 해서 덥석 구매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처음 상인이 부른 가격에서 최소 30%에서 많게는 절반(50%)까지 깎고 흥정을 시작하는 것이 현지의 암묵적인 룰이자 매너입니다. 특히 "촉 파할르(Çok pahalı, 너무 비싸요)"라는 간단한 튀르키예어를 외치며 웃으며 상점을 나가는 제스처를 취하면, 십중팔구 상인들이 "코렐리 굿!(한국인 좋아요)"을 외치며 계산기를 들고 쫓아와 가격을 확 낮춰줍니다.
우리 팀의 한 손님께서는 지인들에게 선물할 예쁜 수제 세라믹 냄비 받침을 여러 개 구매하시려다 흥정에 난항을 겪으셨습니다. 이때 제가 나서서 상인과 가벼운 튀르키예어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분위기를 풀었고, 결국 상인이 기분 좋게 40%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내어주며 서비스로 작은 터키석 모양의 열쇠고리(나자르 본주)까지 덤으로 얹어주었죠. 이런 유쾌한 실랑이와 끈끈한 정(情)이 오가는 것이 바로 그랜드 바자르 쇼핑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3. 여행의 피로를 녹이는 악마의 단맛, 터키식 디저트
거대한 시장의 미로를 한 시간 넘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금세 다리가 아프고 당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반드시 맛봐야 할 것이 바로 튀르키예의 전통 디저트들입니다. 이스탄불은 그야말로 '달콤함의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수제 디저트 천국입니다.
[팩트체크] 튀르키예의 2대 디저트: 로쿰(Lokum)과 바클라바(Baklava) 시장을 걷다 보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두 가지 국민 디저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로 '터키시 딜라이트(Turkish Delight)'라 불리는 '로쿰'입니다. 옥수수 전분과 설탕을 졸여 젤리처럼 쫀득쫀득하게 만든 뒤 피스타치오나 호두, 장미수, 석류즙 등을 넣어 굳힌 디저트입니다. 두 번째는 '바클라바'로, 종잇장처럼 아주 얇은 파이 반죽(필로 도우)을 수십 겹 쌓아 올리고 그사이에 다진 견과류를 듬뿍 넣은 뒤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내어 달콤한 시럽에 푹 절인 페이스트리입니다.
바자르 한쪽의 고풍스러운 현지 카페에 우리 15명의 일행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쌉싸름하고 아주 진한 터키식 전통 커피 '튀르크 카흐베시' 한 모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바클라바 한 조각을 곁들이니, 입안에서 완벽한 밸런스가 이루어졌습니다. 극강의 단맛에 처음엔 고개를 내저으시던 손님들도, 커피의 강렬한 쓴맛과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궁합에 이내 푹 매료되셨죠. 주변 지인들에게 돌릴 여행 선물로 화려하게 포장된 고급 로쿰을 양손 가득 구매하신 손님들의 얼굴에는 다리의 피곤함 대신 알찬 쇼핑의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4. 15편을 마무리하며
수 세기의 웅장한 역사와 상업, 그리고 서민들의 끈적한 삶이 완벽하게 뒤섞인 거대한 용광로, 그랜드 바자르. 과거 실크로드 상인들과 수많은 여행객이 지나갔을 그 낡고 오래된 돌바닥 위를 걸으며, 우리 일행도 이스탄불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틈바구니 속에 작은 발자국 하나를 남겼습니다. 두 손은 무겁게, 마음은 한결 가볍게 시장을 나서는 우리 15명 일행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습니다.
다음 16편에서는 이스탄불의 전경을 한눈에 평화롭게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 '피에르 로티 언덕(Pierre Loti Hill)'에서의 로맨틱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이스탄불의 젖줄인 금각만(골든혼)을 붉게 물들이는 환상적인 일몰과 아쉬운 여행의 막바지 감상을 꾹꾹 눌러 담은 다음 포스팅도 계속해서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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