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빼놓을 수 없듯이, 엘 그레코를 빼놓고는 결코 완성할 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엘 그레코가 스페인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늘날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났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화가로 활동한 뒤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누구보다도 스페인적인 화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톨레도를 방문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이름 역시 엘 그레코다. 톨레도의 좁은 골목과 오래된 성당들을 걷다 보면 마치 그의 그림 속 세상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리스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거장이 되다
엘 그레코(1541~1614)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다.
당시 크레타섬은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잔틴 성화 전통과 르네상스 미술을 함께 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베네치아로 건너가 르네상스 거장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로마에서도 활동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스페인으로 향하게 된다.
처음에는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왕의 취향과 맞지 않았고, 결국 톨레도에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선택이 그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길쭉할까
엘 그레코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한다.
| 산토 도메 성당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AI로 재현한 이미지) |
"왜 사람들의 몸이 이렇게 길지?"
실제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일반적인 비례를 무시할 정도로 길게 표현되어 있다.
손가락은 비정상적으로 길고, 얼굴은 마치 하늘을 향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엘 그레코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인간의 영혼과 신비로운 종교적 체험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은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창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하늘과 땅 사이를 연결하는 존재처럼 표현된다.
톨레도는 왜 엘 그레코를 사랑했을까
16세기 톨레도는 스페인의 종교 중심지였다.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있었고 종교적 열정 또한 매우 강했다.
엘 그레코의 강렬하고 신비로운 화풍은 이러한 도시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는 수많은 성당 제단화와 종교화를 제작했고, 톨레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지금도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에서 관람할 수 있다.
나는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함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위쪽 천상세계와 아래쪽 현실세계를 한 화면에 담아낸 구성은 정말 놀라웠다.
세상을 너무 앞서간 화가
흥미로운 사실은 엘 그레코가 사후 한동안 잊혀진 화가였다는 점이다.
17세기와 18세기의 사람들은 그의 왜곡된 인체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그의 작품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피카소와 세잔은 엘 그레코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많은 미술사가들은 엘 그레코를 현대미술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시대보다 300년 이상 앞서 있었던 천재였는지도 모른다.
톨레도의 하늘을 바라보며
톨레도를 방문하면 유독 하늘이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구름과 강렬한 빛이 교차하는 풍경은 마치 엘 그레코의 그림 속 하늘과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톨레도를 떠날 때마다 엘 그레코가 왜 이 도시를 평생 사랑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분이라면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화가와 자신의 감정을 담아 왜곡해서 표현하는 화가 가운데 누구의 작품이 더 마음에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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