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가 숨겨놓은 상징과 비밀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조금 심심한 그림처럼 느껴졌다. 화려한 배경도 없고, 왕관이나 갑옷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를수록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그림은 결코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었다.
엘 그레코는 인물의 얼굴과 손, 의상, 그리고 검 하나까지도 치밀하게 계산하여 당시 스페인 사회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간상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작품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엘 그레코가 숨겨놓은 의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차분하지만 강렬한 눈빛
작품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부분은 역시 인물의 얼굴이다.
엘 그레코는 인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그렸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의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웃고 있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차분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
나는 이 작품 앞에서 한참 동안 인물의 눈빛만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자신감과 품위, 그리고 강한 신념 같은 것이 느껴졌다.
| 기사의 얼굴 |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 인물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스페인 귀족 후안 데 실바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산티아고 기사단 소속 인물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엘 그레코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의견에 찬성하는 바이다.
하지만 어느 주장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엘 그레코는 특정 인물보다 이상적인 스페인 귀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슴 위에 놓인 손의 의미
이 작품의 핵심은 단연 오른손이다.
인물은 오른손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평범한 동작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16세기 스페인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제스처였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때 이러한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즉, 이 손동작은 단순한 포즈가 아니라 충성, 명예, 진실 그리고 신앙을 의미하는 상징이었다.
엘 그레코는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길고 우아하게 뻗은 손가락은 현실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고귀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나는 작품을 보면서 "과연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기사의 손 |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비싼 검은 옷
작품 속 인물은 화려한 장식 대신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다.
오늘날에는 검은색 정장이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전혀 달랐다.
16세기 스페인에서 검은색 염료는 매우 비쌌다.
따라서 검은 옷은 높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상징했다.
또한 목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흰색 러프 칼라 역시 당시 귀족 사회를 대표하는 패션이었다.
레이스를 이용해 만든 러프 칼라는 매우 비싼 사치품이었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
엘 그레코는 검은 옷과 흰 러프 칼라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인물의 얼굴과 손에 더욱 시선이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 기사의 러프 칼라 |
검과 칼자루가 의미하는 것
작품 오른쪽 아래를 자세히 보면 화려한 검과 칼자루가 보인다.
| 검과 칼자루 |
이 검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당시 검은 귀족과 기사 계급의 권위를 상징했다.
특히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이 인물이 산티아고 기사단과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산티아고 기사단은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군사 종교 단체였다.
엘 그레코는 검을 통해 인물이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명예와 신념을 가진 기사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엘 그레코가 그리고 싶었던 진짜 인물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다시 바라보며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엘 그레코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한 명의 귀족이 아니라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였다는 생각이다.
명예, 신념, 품위, 책임감.
| 엘 그레코가 바라는 이상적 인간으로 보인다 |
오늘날에는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는 가치들이지만, 엘 그레코는 이 모든 것을 단 한 장의 초상화 속에 담아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화려한 색채나 극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는다.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앞에서는 꼭 잠시 멈춰 서 보기를 권한다.
400년 전 한 스페인 기사의 눈빛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 작품 속 인물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명예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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