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요가 그린 성모는 한 아이의 어머니라기보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젊은 소녀처럼 보인다.
얼굴에는 강한 권위나 위엄보다 순수함과 부드러움이 강조되어 있다.
둥근 이마와 부드러운 뺨, 작은 입술과 맑은 피부는 성모가 죄와 가까이 있지 않은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말은 예수가 특별한 방식으로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성모 마리아 자신이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가톨릭의 믿음을 뜻한다.
따라서 화가는 성모를 세속적인 욕망이나 고통의 흔적이 없는 존재로 표현해야 했다.
무리요는 복잡한 교리를 설명하는 대신 누구나 한눈에 순결함을 느낄 수 있는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선택했다.
위쪽을 향한 시선
성모는 관람자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은 화면 위쪽,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늘을 향한다.
이 시선 때문에 성모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존재처럼 보인다.
고개도 완전히 정면을 향하지 않고 살짝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자세는 엄숙한 종교적 권위보다 조용한 기도와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관람자는 성모와 눈을 마주칠 수 없다.
대신 성모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화면 위쪽을 바라보게 된다.
무리요는 성모의 눈을 이용해 관람자의 시선까지 하늘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가슴에 포개진 두 손
성모의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부드럽게 교차되어 있다.
손바닥을 완전히 붙인 전형적인 기도 자세와는 조금 다르다.
자신의 마음을 감싸듯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
이 자세는 겸손, 순종, 경건함을 의미한다.
성모가 자신의 운명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표현이다.
무리요는 손가락을 지나치게 뻣뻣하게 그리지 않았다.
손끝과 손목에 부드러운 곡선을 주어 성모의 온화한 성격이 손동작에서도 느껴지게 했다.
새하얀 옷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모가 입은 흰옷은 순결과 무죄를 상징한다.
그런데 무리요가 그린 흰색은 차갑고 딱딱한 흰색이 아니다.
주변의 황금빛이 옷에 스며들면서 따뜻한 상아색과 은빛, 연한 회색이 함께 나타난다.
덕분에 흰옷은 평평한 천처럼 보이지 않고 빛을 받아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성모의 몸을 감싸는 옷자락은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크게 흔들린다.
이러한 옷의 움직임은 성모가 땅 위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푸른 망토가 감싸고 있는 것
흰옷 위에는 깊은 푸른색 망토가 걸쳐져 있다.
푸른색은 오랫동안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되었다.
하늘과 신성함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흰옷과 강한 색채 대비를 이루어
성모의 모습을 화면 중앙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다.
망토는 성모의 한쪽 어깨에서 시작해 몸 주위를 크게 휘감으며 아래로 흘러내린다.
정지된 인물의 옷이라기보다 바람을 맞으며 움직이는 옷처럼 보인다.
이 커다란 곡선은 성모의 몸을 감싸는 동시에 관람자의 시선을
얼굴에서 손, 옷자락, 발아래 천사들로 자연스럽게 이동시켜 본다.
무리요는 푸른 망토를 단순한 색채 상징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림 전체에 상승감과 움직임을 만드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했다.
성모를 둘러싼 황금빛
성모의 머리 뒤에는 금속으로 만든 둥근 후광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
대신 성모의 몸 전체가 밝은 황금빛과 흰빛에 둘러싸여 있다.
중세 성화에서는 성인의 머리 뒤에 원형 후광을 그려 신성한 인물임을 분명하게 표시했다.
그러나 무리요는 후광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빛 자체가 성모를 감싸도록 표현했다.
그 결과 성모는 빛을 외부에서 받는 인물이라기보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처럼 보인다.
밝은 중심부에서 바깥쪽의 회색 구름으로 이어지는
명암의 변화는 성모가 현실 세계가 아닌 천상의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강화한다.
열두 개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의 도상은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었으며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쓴 여인’과 연결되어 발전했다.
그래서 다른 화가의 작품이나 일부 무리요의 작품에서는
성모의 머리 주위에 열두 개의 별이 선명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에서는 열두 별이 뚜렷한 왕관 형태로 강조되지 않는다.
무리요는 별을 하나씩 세어 보게 만드는 대신 성모 주변을 가득 채운
빛으로 천상의 영광을 표현했다.
상징을 없앤 것이 아니라 별이 담당하던 신성한 분위기를 빛과 색채로 대신한 것이다.
발아래 놓인 초승달
성모의 발아래를 자세히 보면 구름과 천사들 사이로 초승달이 보인다.
초승달은 이 인물이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표지 가운데 하나다.
프라도 미술관도 전신으로 그려진 전통적인 원죄 없는
잉태 도상에서 성모의 발아래 달이 핵심적으로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태양의 빛을 받아 밝아진다.
이 때문에 달을 하느님의 빛을 받아 세상에 전달하는 성모와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끊임없이 모양이 변하는 달 위에 성모가 서 있다는 모습은 변화하는 세속 세계를 초월한 존재라는 인상을 준다.
요한묵시록의 여인과 연결된 초승달은 성모가 악과 어둠을 이긴 존재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천사들은 왜 어린아이의 모습일까?
성모의 발아래에는 여러 명의 어린 천사가 구름 사이를 날고 있다.
이들은 보통 케루빔 또는 푸토라고 불리는 천상의 존재다.
무리요의 천사들은 엄숙하거나 무섭지 않다.
통통한 얼굴과 작은 손발을 가진 장난기 많은 아이처럼 보인다.
한 천사는 성모의 옷자락 가까이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다른 천사들은 구름 사이에서 몸을 비틀거나 날아오른다.
이들의 다양한 동작은 화면 아래쪽에 활기를 더한다.
동시에 천사들이 성모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어
성모가 자신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떠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만든다.
무리요는 성모의 경건함과 천사들의 생동감을 함께 배치했다.
그래서 그림은 엄숙한 종교화이면서도 차갑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 [잉태되신 성모]의 하반신 부분 |
구름은 배경이 아니라 경계다
이 작품에서 구름은 단순히 하늘을 표현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구름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성모가 있는 천상 세계를 나누는 경계다.
화면 바깥쪽의 구름은 회색과 갈색이 섞여 비교적 어둡지만 성모에게
가까워질수록 밝은 금빛과 흰빛으로 변한다.
관람자의 눈은 어두운 가장자리에서 밝은 중앙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무리요는 건축물이나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
그림 속에 땅이나 수평선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서 있는 현실 공간을 지워버리고 빛과 구름만으로 천상의 무대를 만든 것이다.
백합과 장미, 종려나무가 보이지 않는 이유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를 그린 전통적인 작품에는
백합과 장미, 종려나무, 거울, 우물, 닫힌 정원처럼
성모의 순결을 나타내는 여러 상징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상징들이 눈에 띄게 배치되어 있지 않다.
무리요는 수많은 상징을 그림 안에 나열하기보다 성모의 얼굴과 몸짓,
흰옷과 푸른 망토, 초승달과 천사, 빛과 구름에 집중했다.
상징이 많아지면 관람자는 그림 속 물건들의 뜻을 하나씩 해석해야 한다.
반대로 무리요의 작품은 그림을 보는 순간 먼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성모의 순결함과 따뜻함,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신비로움을 설명보다 먼저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리요의 성모 그림이 일반 신자들에게 특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빛과 색으로 만든 상승 운동
이 작품은 성모가 실제로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비밀은 구도에 있다.
성모의 고개와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고,
푸른 망토와 흰옷의 주름은 아래에서 위로 휘감기며 움직인다.
천사들도 성모를 따라 상승하는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가장 밝은 빛은 성모의 얼굴과 상체 주변에 집중된다.
관람자의 시선은 발아래 초승달과 천사에서 시작해 옷자락을 따라 올라가고,
두 손을 거쳐 마지막에는 성모의 얼굴과 하늘을 향한 눈에 도착한다.
바로크 미술은 관람자가 그림을 멀리서 차분히 관찰하게 하기보다 그림 속 사건과 감정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무리요 역시 대각선의 움직임과 빛의 변화,
흔들리는 옷자락과 떠오르는 구름을 이용해 정지된 종교화를
하나의 살아 있는 장면으로 바꾸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렇게 감상해 보자
이 작품 앞에 서면 처음부터 세부 상징을 찾으려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이 좋다.
먼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림 전체를 바라버자.
성모가 화면 중앙에 서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위로 떠오르고 있는지 느껴보는 것이다.
그다음 얼굴과 시선을 살펴보자.
![]() |
| 잉태되신 성모의 상반신부분 |
성모가 어디를 바라보는지 확인한 뒤 두 손과 옷의 흐름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본다.
마지막으로 구름 사이의 천사와 초승달을 찾아보면 그림의 움직임이
하나의 커다란 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자.
처음에는 아름다운 성모 한 명만 보였던 그림에서 빛과 구름,
옷자락과 천사들이 모두 함께 성모를 위로 밀어 올리고 있다는 느낌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무리요는 어려운 신학 교리를 글로 설명하지 않았다.
젊은 얼굴, 하늘을 향한 눈, 가슴에 모은 손, 흰옷과 푸른 망토, 초승달과 천사,
구름 속에서 쏟아지는 빛을 이용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교리를 알고 보아도 깊지만,
교리를 전혀 몰라도 먼저 마음으로 다가오는 그림이다.
그것이 무리요가 만들어낸 성모 그림의 가장 큰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