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서 감탄하고,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앞에서 역사의 비극을 느낀다. 그러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강렬한 충격을 주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이야기할 것이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름답다기보다는 무섭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마치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공포와 광기를 그대로 캔버스 위에 쏟아낸 듯한 느낌이었다.
전쟁과 병, 그리고 고독 속의 고야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스페인 궁정화가로 출발했다. 젊은 시절 그는 왕족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얻었고, 스페인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1790년대 심각한 병을 앓은 뒤 그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후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침공과 독립전쟁을 직접 경험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1808년 5월 3일」 역시 이러한 시대적 비극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말년에 접어든 고야는 세상과 점점 단절되었다. 그는 마드리드 외곽의 한 집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집의 이름이 바로 '귀머거리의 집(Quinta del Sordo)'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이름은 원래 집주인의 별명이었지만, 청력을 잃은 고야에게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 되었다.
벽에 직접 그린 '검은 그림'
1819년부터 1823년 사이, 고야는 자신의 집 벽에 14점의 그림을 남겼다.
이 작품들을 오늘날 우리는 '검은 그림(Black Paintings)'이라고 부른다.
이 그림들은 애초에 전시를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고야는 자신의 집 벽에 직접 그림을 그렸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이 작품들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검은 그림들은 이전의 궁정화나 역사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 절망,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다.
왜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아들을 먹었을까?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
신화 속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들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태어나는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버린다.
고야는 이 신화를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 사투르누스는 광기에 휩싸인 눈빛으로 이미 절반 이상 먹어 치운 시신을 붙잡고 있다. 화면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붉은 피와 창백한 살점만이 강렬하게 대비된다.
특히 커다랗게 뜬 눈은 보는 사람에게 극도의 공포를 안겨 준다.
많은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을 단순한 신화화가 아니라 당시 스페인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고야의 절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전쟁과 폭력, 권력욕이 결국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인간은 왜 같은 비극을 반복할까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발전했다고 말하지만, 과연 인간의 본성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권력과 탐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어쩌면 고야가 200년 전에 느꼈던 절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단순히 무서운 그림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꼭 이 작품 앞에 잠시 서 보기를 권하고 싶다. 분명 아름답다는 말과는 다른, 그러나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감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고야의 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인간은 과연 과거보다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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