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를 감상한 뒤 바로 옆에 걸려 있는 「옷을 입은 마하」를 바라보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게 된다.
'왜 고야는 똑같은 여인에게 다시 옷을 입혀 그렸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을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이 그림은 단순히 옷을 입은 초상화가 아니라 18세기 스페인 사회와 문화,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의 자존심을 담아낸 작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옷을 입은 마하」는 단순한 미인도가 아니다. 작품 속에는 당시 스페인 사회의 분위기와 정치적 상황,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하(Maja)는 이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하'를 그림 속 여성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하는 이름이 아니다.
18세기 스페인에서 '마호(Majo)'와 '마하(Maja)'는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고 자유로운 성격을 가진 도시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특히 마하들은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귀족 문화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독특한 패션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색상의 옷과 레이스, 전통적인 장신구를 즐겨 사용했고, 자유롭고 당당한 태도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자면 당시 스페인의 가장 세련된 '트렌드세터'였던 셈이다.
왜 스페인 사람들은 마하를 사랑했을까?
18세기 유럽 사회에서 프랑스는 문화의 중심이었다.
유럽 각국의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프랑스식 의상을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스페인 귀족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부 스페인 사람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반발했다.
그들은 스페인만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 싶어 했다.
바로 이때 등장한 인물이 마하였다.
마하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는 스페인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흥미롭게도 많은 귀족들조차 평소에는 프랑스식 복장을 입으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하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고야 역시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던 화가였다.
그림 속 의상에 숨겨진 의미
「옷을 입은 마하」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상이 상당히 화려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옷을 입은 마하 |
검은색 레이스 장식이 달린 노란색 재킷, 흰색 드레스, 그리고 섬세한 장식들은 당시 스페인 여성들이 선호했던 전통 의상을 연상시킨다.
특히 검은색과 노란색의 강렬한 대비는 스페인 회화 특유의 색채 감각을 잘 보여준다.
고야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스페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며 마치 18세기 마드리드의 살롱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강인한 분위기가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궁정화가였던 고야의 또 다른 시선
고야는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였다.
그는 왕과 왕비, 귀족들의 초상화를 수없이 그렸다.
하지만 고야는 단순히 권력자들의 모습을 아름답게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이면을 작품 속에 담으려 했다.
「옷을 입은 마하」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귀부인의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작품 속 마하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그녀는 당당하게 정면을 바라본다.
그 눈빛은 마치 자신의 삶과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고야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전통적인 역할에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가장 스페인다운 그림
개인적으로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수많은 작품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인 그림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옷을 입은 마하」를 선택할 것 같다.
이 작품 속에는 스페인의 패션, 문화, 자존심 그리고 자유로운 정신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벌거벗은 마하」만 보고 지나치지 말고, 꼭 「옷을 입은 마하」 앞에서도 잠시 멈춰 서 보기를 권한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 한 벌 속에도 당시 스페인 사회의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여행 중 한 나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술 작품을 만난 적이 있는가? 있다면 그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댓글로 남겨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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