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43편 라파엘 《추기경의 초상》 세부 감상, 차가운 눈빛과 붉은 비단에 숨은 것

 프라도 미술관에서 실제로 이 작품 앞에 섰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엇부터 눈에 들어오는지, 얼굴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게 되는지, 

붉은 옷은 왜 그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지 하나씩 따라가 보자.


먼저 한 걸음 떨어져서 전체를 본다


라파엘 《추기경의 초상》, 1510~1511년경. 어두운 배경 앞에 붉은 옷을 입은 추기경을 배치했다. 머리에서 넓은 어깨와 팔로 이어지는 안정된 삼각형 구도가 인물의 존재감을 단단하게 잡아준다.
라파엘 작 [추기경의 초상]


처음에는 세부를 보지 않는 편이 좋다.

조금 떨어져 화면 전체를 보면 추기경의 몸이 

커다란 삼각형을 만든다는 것이 먼저 느껴진다. 

머리가 꼭짓점이 되고 양쪽 어깨와 팔이 아래쪽으로 

넓어지면서 화면을 단단하게 잡는다.

프라도 미술관 역시 이 인물의 구도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떠올릴 수 있는 구성이다.

하지만 《모나리자》와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이곳에는 멀리 펼쳐지는 풍경도 없고, 강도 없고, 산도 없다.

뒤에는 짙은 녹색의 어두운 면만 놓여 있다. 

프라도의 연구 자료에서는 이것을 어두운 녹색의 커튼이나 

걸개처럼 보이는 중성적인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덕분에 빠져나갈 곳이 없다.

우리 눈은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다.

화면에는 사실상 이 남자밖에 없다.


그런데 정면을 보고 있지는 않는다


길게 내려오는 코와 다문 입술, 가늘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얼굴 윤곽을 보자. 강한 표정을 만들지 않았는데도 눈과 입의 절제된 표현 때문에 쉽게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추기경의 얼굴 확대


이제 얼굴을 보자.

처음에는 추기경이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몸과 얼굴은 완전한 정면이 아니다. 약간 방향을 틀고 앉아 있다.

이 작은 비틀림이 중요하다.

증명사진처럼 얼굴과 몸이 모두 정면을 향했다면 

인물은 훨씬 평평하고 경직되어 보였을 것이다. 

라파엘은 몸을 살짝 돌려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얼굴과 눈의 방향을 미묘하게 조절했다.

그래서 인물은 단순히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방금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여기서부터 초상화에 긴장이 생긴다.

몸은 조용하다.

입도 다물고 있다.

손도 과장된 동작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눈만은 이상할 정도로 살아 있다.


얼굴보다 먼저 기억에 남는 눈


두 눈만 확대하면 이 초상화의 미묘한 긴장이 더욱 선명해진다. 얼굴의 방향과 시선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추기경이 그림 밖의 관람자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눈확대  (필자는 이 사진을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 그림을 오래 보고 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눈일 가능성이 크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인물의 시선을 차갑고 거리를 두는 듯한 시선으로 설명한다. 

특히 왼쪽 눈의 방향 때문에 관람자를 

더욱 직접적으로 바라보는 인상을 준다고 본다.

두 눈을 자세히 비교해보자.

얼굴이 향하는 방향과 눈동자가 향하는 방향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 작은 어긋남 때문에 시선이 강해진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눈은 라파엘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그린 것이 아니다.

프라도의 연구에 따르면 왼쪽 눈의 위치를 그리는 과정에서 수정했다. 

이른바 펜티멘토, 

즉 화가가 작업 도중 형태나 위치를 바꾼 흔적이 지금도 육안으로 확인된다.

(X선 촬영이나 적외선 찰영을 하면 더더욱 또렷이 드러난다) 

라파엘은 눈을 옮겨 얼굴이 돌아간 방향과 

시선 사이에 더 강한 긴장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단서다.

이 강렬한 눈빛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라파엘은 얼굴을 닮게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어디를 보게 할 것인가까지 조절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림을 보는 동시에 그림 속 남자에게 관찰당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눈 아래로 내려가면 얼굴의 날카로움이 보인다


이제 눈에서 코와 입으로 천천히 내려가 보자.

얼굴은 둥글고 부드러운 편이 아니다.

광대와 뺨의 굴곡이 분명하고 코는 길게 내려온다. 턱으로 갈수록 얼굴은 좁아진다.

프라도 역시 이 남자를 마르고 특징이 뚜렷한 인물로 설명한다.

그런데 라파엘은 이런 특징을 과장하지 않는다.

주름을 세어가며 기록하듯 그리지도 않았다.

피부의 밝음과 어둠을 아주 부드럽게 연결하면서 얼굴의 입체감을 만든다. 

그래서 코가 앞으로 나오고, 눈 주변이 들어가며, 볼과 턱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다.

이 부분에서는 선보다 명암이 일을 한다.

얼굴 가장자리를 검은 윤곽선으로 잘라낸 것이 아니라 

밝은 피부가 어두운 배경과 만나면서 형태가 생긴다.

그래서 얼굴이 종이 위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보자.

입술은 단단히 닫혀 있다.

웃음도 없다.

그렇다고 분노한 표정도 아니다.

바로 이 애매함이 좋다.

눈은 관람자를 의식하는 것 같은데 입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표정을 읽으려고 얼굴을 계속 보게 된다.

차가운 사람일까.

경계하는 것일까.

자신감이 있는 것일까.

그림만으로 그 성격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라파엘이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표정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사람의 얼굴은 한 번 보고 쉽게 읽히지 않는다.

말이 없는 얼굴이 오히려 오래 붙잡는다.


이제 붉은색으로 시선을 내려보자


붉은 모제타를 가까이 보면 같은 빨강 안에서도 밝고 어두운 색이 물결처럼 달라진다. 라파엘은 섬세한 색의 변화로 비단 특유의 모아레 광택과 옷의 부피감을 표현했다.
붉은 비단 모제타 세부

얼굴을 충분히 봤다면 이제 화면에서 가장 넓고 강렬한 색으로 내려가자.

붉은색이다.

머리 위의 붉은 모자에서 시작된 색이 어깨와 가슴의 붉은 옷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붉은색은 한 가지 빨강이 아니다.

밝은 부분은 분홍빛에 가까워지고, 

접히거나 빛에서 멀어진 곳은 훨씬 깊고 어두운 붉은색으로 변한다.

특히 어깨를 덮은 붉은 비단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그냥 매끈한 빨간 천이 아니다.

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천의 표면에 물결처럼 광택이 흐른다.

프라도는 이 부분을 붉은 비단 모제타의 모아레 효과라고 설명한다. 

밝은 부분에는 분홍색을 사용해 비단 특유의 물결치는 광택을 만들어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 작품에서 더 재미있는 부분이다.

라파엘은 천에 선을 잔뜩 그어 비단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색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변화만으로 천의 두께와 광택을 느끼게 한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 손끝의 감각까지 따라오는 듯하다.


붉은색 옆에 흰색을 놓은 이유


그 붉은 옷 바로 옆에는 강한 흰색이 있다.

소매다.

여기서 그림 전체의 색을 다시 한번 보자.

색의 종류가 의외로 많지 않다.

짙은 녹색의 배경.

붉은 모자와 옷.

흰 소매.

그리고 얼굴과 손의 피부색.

거의 이것으로 끝난다.

프라도 역시 이 작품의 색채 범위가 넓지는 않지만 

매우 생생하게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붉은 비단과 순백색 소매의 대비가 강한 현실감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실제로 흰색이 없다고 상상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화면 전체가 붉은색과 어두운 녹색 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밝은 소매가 중간에 들어오면서 화면이 갑자기 열린다.

얼굴에서 시작된 밝음이 흰 소매로 내려가고 다시 손으로 이어진다.

색이 시선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손은 얼굴보다 조용하다

화면 아래에서는 붉은 옷 사이로 새하얀 소매와 손이 드러난다. 강렬한 붉은색과 밝은 흰색의 대비가 시선을 아래로 이끌면서, 얼굴에 집중된 화면에 또 하나의 밝은 지점을 만들어준다.
손과 흰 소매 세부


이제 화면 아래쪽으로 내려가 손을 보자.

초상화에서 손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얼굴만 그린 흉상과 달리 손까지 보여주면 인물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지고 몸의 자세도 훨씬 분명해진다.

라파엘은 이곳에서 손에 특별한 사건을 맡기지 않는다.

무언가를 높이 들거나 관람자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손은 화면 아래쪽에 차분하게 놓여 있다.

그래서 다시 얼굴과 대비된다.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몸도 움직이지 않는다.

시선만 움직이는 듯하다.

그 결과 그림 전체가 아주 정적인데도 완전히 멈춘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눈과 몸 사이에 작은 긴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배경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마지막으로 인물 뒤를 보자.

처음에는 그냥 검은 배경처럼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완전히 검은색은 아니다.

매우 짙은 녹색 계열이다.

프라도의 연구에서는 커튼이나 걸개처럼 보이는 배경이라고 설명하지만, 

구체적인 장소를 알려줄 만한 물건은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책상도 없다.

창문도 없다.

기둥도 없다.

멀리 보이는 로마의 풍경도 없다.

이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배경에 사물이 많았다면 우리는 그 물건을 읽으려 했을 것이다.

어떤 방인지, 어떤 책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라파엘은 그런 단서를 거의 없애버렸다.

남은 것은 얼굴과 옷, 손이다.

즉 이 사람을 설명하는 것은 소유물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와 그가 입고 있는 옷이다.


왜 얼굴이 이렇게 앞으로 튀어나와 보일까


화면을 다시 전체적으로 보면 인물이 배경에서 상당히 앞으로 나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프라도는 이 인물이 실물보다 약간 크게 표현되었으며, 

삼각형을 이루는 몸이 화면 표면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배경에 깊은 공간이 없다는 점도 영향을 준다.

뒤로 빠져나갈 공간이 없으니 인물은 자연스럽게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밝은 얼굴과 흰 소매, 붉은 비단이 어두운 녹색 배경과 강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작은 그림인데도 인물의 존재감은 작지 않다.

작품 크기는 79×61cm다.

거대한 궁정 초상화가 아니다.

그런데 앞에 서면 한 사람이 꽤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와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크기로 압도하는 그림이 아니라 거리로 압박하는 그림이다.


마지막에는 다시 눈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림 전체를 한 번 더 보자.

처음에는 붉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 얼굴을 봤다.

눈에서 코와 입으로 내려갔다.

붉은 비단의 광택을 따라 어깨와 몸으로 이동했고, 흰 소매와 손까지 내려갔다.

어두운 녹색 배경도 확인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결국 다시 눈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사람인데, 가장 살아 있는 것도 사람이다.

배경에는 사건이 없다.

손에도 사건이 없다.

입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선 하나가 화면 전체를 긴장시킨다.

특히 라파엘이 작업 과정에서 눈의 위치까지 

수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그 시선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는 단순히 눈을 정교하게 그린 것이 아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볼 때는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먼저 붉은 모자를 본다.

그 아래 얼굴을 본다.

그리고 눈을 본다.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말고 잠시 그대로 마주 본다.

그다음 붉은 비단의 물결치는 광택과 새하얀 소매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 손을 본다.

마지막에 다시 얼굴로 올라온다.

그러면 처음에는 ‘붉은 옷을 입은 르네상스 추기경’으로 보였던 사람이 조금 달라진다.

이름도 모르는 500년 전 인물이 갑자기 우리 앞에 아주 가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라파엘이 이 그림에서 남긴 가장 놀라운 것은 붉은 비단의 화려함도, 

추기경이라는 높은 지위도 아닐지 모른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림 속 사람 사이의 거리다.


500년이라는 시간은 멀다.

하지만 저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 거리는 거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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