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실 잣는 여인들》을 처음 만나면 조금 당황할 수 있다.
왕도 없고 공주도 없다. 전쟁도 기적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작업장에서 몇몇 여인이 실을 잣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작품은
마드리드의 태피스트리 공방을 그린 일상 풍속화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림의 진짜 제목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붙어 있다.
《아라크네의 우화》.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인간이 신에게 도전했다가 파멸하는 바로 그 이야기다.
벨라스케스는 왜 신화를 이렇게 평범한 노동의 모습 속에 감추었을까.
이 질문에서 그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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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실 잣는 여인들》 |
벨라스케스가 거의 모든 것을 이루었던 시기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대략 1655년에서 1660년 사이로 본다.
프라도 미술관도 현재 이 제작 시기를 제시하고 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으며, 현재 크기는 세로 220cm, 가로 289cm에 이른다.
이때 벨라스케스는 이미 젊은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펠리페 4세의 궁정에서 활동했고, 두 차례 이탈리아를 경험했으며,
초상화와 역사화, 신화화를 두루 거친 뒤였다.
《시녀들》 역시 이 무렵에 탄생했다.
그러니 《실 잣는 여인들》에서 벨라스케스의 생애를 처음부터 다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이번 작품에서 기억할 것은 하나면 충분하다.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회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던
마지막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작품을 벨라스케스 말년의
가장 복잡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으며,
《시녀들》과 마찬가지로 관람자가 스스로 화면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그의 후기 회화의 정점으로 설명한다.
젊은 시절처럼 이야기를 명확하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과 실제 주제가 다르고, 현실과 신화가 겹치며,
그림 속에 또 다른 미술 작품이 들어온다.
그림을 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가 된다.
17세기 스페인, 그림은 단순한 기술이었을까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당시 화가의 사회적 위치도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벨라스케스를 당연히 위대한 예술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17세기 스페인에서 회화는
손으로 물감을 다루는 기술과 연결되어 있었고,
화가의 지위 역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 예술가’의 개념과는 달랐다.
벨라스케스에게는 회화가 단순한 수공 기술이 아니라
지적인 창조 행위라는 문제가 중요했다.
그 자신도 궁정 안에서 단순히 그림만 그린 사람이 아니었다.
왕실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고,
말년에는 왕궁의 실내와 예술품을 관리하는 중요한 업무까지 담당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 잣는 여인들》은 묘하게 의미심장해진다.
그림의 출발점은 ‘실’이다.
실을 만들고, 그것을 엮고, 마침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이 어느 순간 예술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단순히 “아라크네 신화를 그린 그림”으로만 읽기보다,
기술과 예술, 모방과 창조, 예술가 사이의 경쟁을 다룬 그림으로 보는 해석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프라도 역시 이런 미술사적 해석을 중요하게 소개한다.
아라크네는 왜 신에게 도전했을까
그림의 배경이 되는 신화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라크네는 천을 짜는 솜씨가 뛰어난 인간 여인이었다.
문제는 단순히 솜씨가 좋았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여신에게 배운 것이 아니며,
직조의 여신 미네르바와 겨루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에 해당하는 여신이 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다.
결국 인간과 신의 직조 대결이 벌어진다.
여기서 벨라스케스가 선택한 부분이 절묘하다.
아라크네가 짠 직물에는 신들의 영광만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신들이 인간을 속이고 욕망을 좇았던 이야기들이 담겼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로파의 납치다.
제우스, 즉 로마식 이름으로
유피테르는 아름다운 유로파에게 접근하기 위해 황소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유로파가 황소의 등에 올라타자 그는 그녀를 바다 건너 크레타로 데려간다.
아라크네는 바로 이런 신들의 행동을 자신의 직물에 담았다.
인간이 신보다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그 작품의 내용마저 신들의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드러낸 셈이다.
결국 아라크네는 신의 분노를 피하지 못하고 거미로 변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교훈은 간단해 보인다.
인간이 오만하게 신에게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신화 속에 티치아노가 들어오다
여기서 앞선 『프라도 명작산책』에서 만났던 티치아노가 다시 등장한다.
벨라스케스는 아라크네의 이야기를 표현하면서
화면 속 태피스트리에 티치아노의 《유로파의 납치》를 끌어들였다.
이 작품은 티치아노가 펠리페 2세를 위해 제작한 유명한 신화 연작,
이른바 ‘포에지에’ 가운데 하나다.
원작은 현재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있다.
그런데 연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루벤스가 1628~1629년 마드리드에 머물렀을 때
티치아노의 《유로파의 납치》를 모사했다.
그리고 벨라스케스는 《실 잣는 여인들》에서 다시 그 이미지를 이용했다.
프라도 미술관 역시 이 연결 관계를 작품 해석의 중요한 단서로 제시한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구조다.
신화 속에서는 아라크네가 신과 경쟁한다.
현실의 미술사에서는 티치아노가 먼저 그림을 그렸고,
루벤스가 그것을 모사했으며,
다시 벨라스케스가 그 전통을 자신의 그림 안으로 끌어들였다.
신과 인간의 경쟁이 화가와 화가의 경쟁으로 바뀐다.
그러나 여기서 ‘모사’는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다.
이전 거장의 작품을 보고 배우고,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바꾸고,
다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프라도는 벨라스케스가 소장했던 스페인 신화학자 후안 페레스 데 모야의 저술과도
이 작품을 연결한다.
페레스 데 모야는 아라크네 이야기를 예술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과
관련지어 해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티치아노에서 루벤스로,
다시 벨라스케스로 이어지는 관계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누구를 위해 그린 그림이었을까
《실 잣는 여인들》은 왕실을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확정할 수 없다.
현재 확인되는 중요한 초기 기록은 1664년에 작성된 페드로 데 아르세의 재산 목록이다.
그는 왕실 알카사르에서 직책을 맡았던 인물이며,
그 목록에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아라크네의 우화’가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크기도 현재 작품의 원래 부분과 상당히 가깝다.
이 문헌은 오늘날 《실 잣는 여인들》의 주제를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다만 페드로 데 아르세가 직접 벨라스케스에게
이 그림을 주문했다고 단정할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누구의 주문으로 왜 그렸는가”를 확실한 이야기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1664년에는 그의 소장품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그림은 메디나셀리 공작의 소장품을 거쳐 18세기 초 왕실 컬렉션으로 들어갔다.
1711년 마드리드 왕궁 알카사르의 기록에 등장하고,
이후 부엔 레티로 궁과 신왕궁을 거쳐 오늘날 프라도 미술관 컬렉션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왜 오랫동안 ‘직조 공방’으로 보았을까
이 그림의 해석이 복잡해진 데에는 작품 자체의 역사도 한몫했다.
벨라스케스가 처음 그린 캔버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완전히 같지 않았다.
18세기에 캔버스 위쪽과 좌우, 아래쪽에 새로운 부분이 덧붙여졌다.
특히 위쪽에는 넓은 공간이 추가되었다.
이런 변화 때문에 화면 뒤쪽의 장면이 원래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앞쪽의 직조 작업이 그림의 주인공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프라도는 현재 전시에서 이 후대의 추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작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 과거 사람들이 이 그림을 직조 공방의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제목부터 《실 잣는 여인들》이라고 불렸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일하는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에 들어서면서 연구자들은 그 뒤에 숨은 신화적 의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664년 페드로 데 아르세의 재산 목록에서
벨라스케스의 ‘아라크네의 우화’가 확인되면서
두 그림이 같은 작품이라는 해석에 강력한 문헌적 근거가 생겼다.
이때부터 그림은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신화를 멀리 밀어놓은 화가
보통 신화화를 그린다면 신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루벤스의 신화화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신들의 육체와 격렬한 움직임이 화면을 압도한다.
그런데 벨라스케스는 반대로 갔다.
신화의 결정적인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일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공간을 앞에 놓고, 신화는 그 너머로 밀어낸다.
이것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관람자는 처음에는 노동을 본다.
그다음 그 노동이 직물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직물은 이미지가 된다.
그 이미지 안에는 티치아노가 있다.
티치아노 뒤에는 고대 신화가 있다.
그 신화에는 아라크네와 미네르바의 경쟁이 있고,
다시 그 경쟁은 예술가의 솜씨와 창조의 문제로 돌아온다.
현실의 노동 → 직조 → 이미지 → 신화 → 예술의 경쟁.
벨라스케스는 이 여러 층을 하나의 캔버스 안에 포개놓았다.
그래서 《실 잣는 여인들―아라크네의 우화》는 단순히 신화를 설명하는 삽화가 아니다.
신화가 그림의 주제이면서 동시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프라도 미술관도 이 작품을 물질적인 제작 과정에서 예술적 형상이 탄생하는 과정,
그리고 예술의 발전과 경쟁이라는 문제와 연결해 읽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런 의미는 하나의 확정된 정답이라기보다
이 복잡한 그림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해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시녀들》과 닮은 또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시기의 《시녀들》과 함께 생각하면
벨라스케스가 말년에 무엇에 관심을 두었는지도 조금 보인다.
그는 더 이상 관람자에게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시녀들》에서는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실 잣는 여인들》에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예술이며, 무엇이 주제이고 무엇이 배경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두 작품 모두 보는 사람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관계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서는 처음부터 아라크네를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벨라스케스가 마련한 함정에 한번 빠져보는 편이 좋다.
먼저 평범한 직조 공방이라고 생각하며 본다.
그러다가 저 멀리 다른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대 신화와 티치아노, 루벤스, 벨라스케스가 한꺼번에 연결되는 순간을 만난다.
그제야 제목의 두 부분이 하나로 합쳐진다.
《실 잣는 여인들》이면서 동시에 《아라크네의 우화》인 그림.
눈앞에는 실을 만드는 노동이 있고, 그 너머에는 이미지를 만드는 예술이 있다.
벨라스케스는 신화를 화려하게 보여주는 대신 평범한 현실 뒤에 숨겼다.
그리고 관람자가 그 신화를 스스로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신보다 먼저 인간의 노동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벨라스케스가 선택한 가장 대담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