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편에서는 왜 17세기 초 플랑드르에서 이런 정물화가 등장했는지를 살펴봤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모두 내려놓고 그림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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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라 페테르스 작《꽃과 은도금 잔이 있는 정물》 |
클라라 페테르스의 이 작품은 1611년, 나무판에 유채로 그린 정물화다.
정식 제목은 상당히 길다.
《꽃, 은도금 잔, 말린 과일, 과자, 빵 막대, 포도주와 주석 주전자가 있는 정물》이다.
제목 그대로 화면에는 꽃과 음식, 술잔과 여러 종류의 그릇이 가득하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사람도 없고 움직이는 동물도 없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물건들이 탁자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재미있어진다.
페테르스는 무엇을 그렸는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물건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인지까지 치밀하게 계산해놓았다.
먼저 화면 전체를 한 번 본다
처음에는 개별 사물의 이름을 찾지 말고 화면을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눠보면 좋다.
왼쪽에는 꽃다발이 있다.
가운데에는 흰색의 커다란 그릇과 그 앞에 솟아 있는 금빛 잔이 있다.
오른쪽에는 붉은 포도주가 담긴 유리잔과 검은빛에 가까운 주석 주전자,
그리고 과자와 빵 막대가 놓인 접시가 있다.
모두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
왼쪽의 꽃줄기는 위쪽으로 길게 뻗어 중앙을 향한다.
오른쪽에서는 길쭉한 금속 물체와 유리잔, 주전자의 손잡이와 주둥이가 서로 다른 방향을 만든다.
그 사이에서 중앙의 금빛 잔은 거의 기둥처럼 수직으로 서 있다.
그래서 그림은 사물이 많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가운데의 금빛 잔이 화면의 중심축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시작하면 꽃이 먼저 눈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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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다발과 꽃병, 탁자에 놓인 꽃 |
이제 왼쪽으로 가보자.
꽃다발은 단정하게 둥근 형태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줄기들이 위와 옆으로 제각기 뻗는다.
화면 왼쪽 위로 휘어 올라가는 가느다란 줄기도 있고,
화면 중앙 쪽으로 길게 뻗어가는 줄기도 있다.
그 아래에는 붉은색과 분홍색, 흰색, 노란색, 보라색 꽃들이 서로 겹쳐 있다.
프라도의 작품 정보에는
이 그림에 수선화, 아네모네, 붓꽃, 히아신스, 모란, 장미, 금잔화, 로즈메리 등을
비롯한 여러 식물이 등장한다고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그림 앞에서는 꽃 이름을 하나씩 외우듯 찾을 필요는 없다.
먼저 색을 보면 된다.
어두운 배경 앞에 흰 꽃이 떠오르고, 그 사이에 노란색과 붉은색이 박힌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커다란 분홍색 꽃들이 무게를 잡는다.
꽃병도 그냥 지나치면 아깝다.
회녹색에 가까운 표면에는 세로 홈과 장식이 보인다.
꽃잎의 부드러움과 달리 단단하고 차가운 물체라는 느낌이 분명하다.
페테르스가 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꽃을 꽃답게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꽃잎과 금속, 유리와 도기처럼 서로 다른 재질이 한 화면 안에서 확실히 구별되게 만든다.
프라도 역시 페테르스 정물화의 특징으로 사물의 형태와 질감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을 지적한다.
꽃병 아래로 내려가면 완벽하게 정돈된 세계가 깨진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면 재미있는 변화가 생긴다.
꽃은 꽃병 안에만 있지 않다.
커다란 붉은 꽃 한 송이가 탁자 위에 떨어져 있다.
그 옆으로 잎과 줄기가 길게 누워 있고 작은 꽃도 보인다.
이 부분 때문에 화면이 지나치게 딱딱해지지 않는다.
만약 모든 꽃이 꽃병 안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면 왼쪽은 하나의 완성된 덩어리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페테르스는 몇 송이를 밖으로 꺼내놓았다.
그 결과 우리의 시선도 꽃병에서 멈추지 않는다.
탁자 위의 떨어진 꽃을 따라 자연스럽게 가운데로 이동한다.
정물화인데도 시선에는 움직임이 생긴다.
이제 가운데의 흰 그릇을 본다
화면 중앙에는 크고 밝은 그릇이 놓여 있다.
이 그릇은 색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온다.
배경은 짙고 꽃병과 주전자도 비교적 어두운데, 가운데 그릇만 넓은 면적이 밝은 흰색이다.
가장자리는 물결처럼 굴곡져 있고 빛을 받은 부분과 그늘진 부분이 반복된다.
프라도는 이 그릇을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이탈리아 파엔차에서 제작된 유형의 도기로 설명한다.
그릇 안에는 아몬드를 비롯해 말린 과일과 여러 종류의 과자가 가득 담겨 있다.
여기에서 페테르스의 관찰력이 드러난다.
모두 갈색 계열이라고 해서 한 덩어리로 처리하지 않는다.
매끈한 것과 쭈글쭈글한 것, 둥근 것과 길쭉한 것, 가루가 묻어 희게 보이는 것들이 서로 구별된다.
우리가 실제 식탁 앞에서 음식을 볼 때 경험하는 차이를 붓으로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화면의 진짜 중심은 그릇보다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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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린 과일과 과자가 담긴 그릇과 은도금 잔 확대 |
흰 그릇 바로 앞에 금빛 물체가 하나 서 있다.
은에 금을 입힌 화려한 잔이다.
이 물건은 그냥 식탁 위에 놓인 여러 물건 가운데 하나처럼 보이지만 위치를 보면 그렇지 않다.
거의 정확하게 화면 중앙을 차지한다.
게다가 세로로 길다.
아래의 받침에서 가느다란 몸체를 지나 위쪽의 둥근 부분과 뚜껑까지 이어지면서
화면을 위아래로 묶어준다.
주변 물건들이 대부분 옆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이 수직선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색도 다르다.
주변의 흰색, 회색, 녹색, 갈색 사이에서 금빛이 유난히 눈에 띈다.
표면에는 작은 장식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빛을 정면으로 받는 부분은 밝게 반짝이고,
굴곡이 안으로 들어가는 곳은 갈색에 가까운 어둠으로 변한다.
그래서 금속인데도 평평해 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물건이면서 동시에 빛에 따라 끊임없이 표정이 바뀌는 물건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서 아주 작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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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식과 미세한 반사가 보이는 은도금 잔 세부 |
이 그림에서 가장 유명한 장치를 볼 차례다.
이 사진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사진이 해상도가 낮아서 프라도 미술관에 요청해서 받은 사진이다.
중앙의 금빛 은도금 잔과 오른쪽의 주석 주전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반짝이는 금속 표면에는 페테르스 자신의 모습이 아주 작게 반복되어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 따르면 은도금 잔에는 세 번, 주석 주전자에는
네 번의 반사 자화상이 들어 있다.
전체 화면에서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
금빛 잔과 주전자의 밝은 반사광 사이에 화가의 머리 장식과 큰 칼라,
어깨가 솟은 옷차림이 미세하게 나타난다.
클라라 페테르스 자신이다.
프라도는 이 작품의 금속 용기 표면에 페테르스의 자화상이 반사되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녀는 다른 여러 정물화에서도 반짝이는 금속 표면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집어넣었다.
이 부분이 재미있는 이유는 자화상이면서도 자화상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가는 화면 한가운데 서서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얼굴도 아주 작다.
그림을 대충 보면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발견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사람이 없는 정물화라고 생각했던 그림 속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이 모든 물건을 바라보고 그린 사람 자신이 들어 있었다.
더구나 페테르스는 자신의 얼굴을 아무 곳에나 그려 넣은 것이 아니다.
빛을 반사하는 금속 표면에 넣었다.
따라서 작은 자화상은 동시에 두 가지 능력을 보여준다.
자기 모습을 그리는 능력과 반짝이는 금속의 반사를 묘사하는 능력이다.
서명과 자화상이 한꺼번에 화가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오른쪽 위의 붉은색을 찾아보자
금빛 잔에서 시선을 조금 오른쪽 위로 옮기면 붉은 포도주가 담긴 길쭉한 유리잔이 나온다.
이 붉은색은 중요하다.
왼쪽 꽃다발에 흩어진 붉은색이 화면 오른쪽에서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왼쪽과 오른쪽이 색으로 연결된다.
유리잔 자체도 자세히 볼 만하다.
위쪽은 비교적 단순한 원통형이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형태가 복잡해진다.
투명한 유리이기 때문에 뒤쪽의 어둠과 겹치며 부분마다 밝기가 달라진다.
붉은 포도주는 잔의 위쪽을 채우고 있다.
프라도의 최신 작품 정보는 이 붉은 포도주가 수입품이었으며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가운데 한 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림을 감상할 때 더 먼저 볼 것은 색이다.
짙은 배경 앞에서 투명한 유리와 붉은 액체가 겹치면서 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붉은색을 만든다.
가장 오른쪽의 주전자는 거의 검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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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포도주가 든 유리잔과 어두운 주석 주전자 확대 |
이제 시선을 오른쪽 끝으로 보내보자.
커다란 주석 주전자가 있다.
처음 보면 검은색 물체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둡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색 하나로 칠한 것이 아니다.
둥근 몸통을 따라 회색빛 반사가 흐르고, 뚜껑과 손잡이,
주둥이에는 조금씩 다른 밝기의 빛이 걸려 있다.
바로 이 미세한 밝기 차이 때문에 주전자의 부피가 살아난다.
특히 몸통을 보자.
가운데가 불룩하고 위아래로 좁아지는 형태가 빛의 변화만으로 드러난다.
금빛 잔과 비교하면 더 재미있다.
둘 다 금속이다.
그런데 하나는 화려하게 빛나고 다른 하나는 묵직하게 빛난다.
페테르스는 ‘금속’이라는 한 가지 질감을 그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금속이 빛을 받아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를 그리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다시 음식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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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시 위에 놓인 과자와 구부러진 빵 막대 확대 |
주전자 아래쪽에는 접시가 놓여 있다.
그 위에는 둥근 과자와 희게 설탕이 묻은 듯한 작은 과자들이 있고,
길쭉하게 구부러진 빵 막대가 화면 오른쪽을 크게 휘감는다.
이 부분에서는 형태가 재미있다.
중앙의 금빛 잔은 수직으로 곧게 서 있는데 오른쪽의 빵 막대는 둥글게 휘어 있다.
직선과 곡선이 대비된다.
그릇 가장자리도 둥글고, 과자도 둥글다.
그래서 오른쪽 아래에는 작은 원과 큰 곡선이 계속 반복된다.
그 사이에 가느다란 물건들이 놓이면서 화면이 너무 단조롭게 흐르는 것을 막는다.
페테르스는 음식을 단순히 먹음직스럽게 쌓아놓은 것이 아니다.
크기와 형태가 다른 물건을 조합해 화면의 리듬을 만든다.
물건과 물건 사이의 빈 공간도 본다
이 그림을 오래 볼수록 사물만큼 중요한 것이 사물 사이의 어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꽃다발 뒤에도 어둠이 있다.
금빛 잔과 유리잔 사이에도 어둠이 있고, 주전자 주변에도 넓은 어둠이 남아 있다.
페테르스는 배경을 복잡하게 꾸미지 않았다.
창문도 없고 멀리 펼쳐지는 풍경도 없다.
그 덕분에 모든 시선이 탁자 위에 머문다.
프라도가 페테르스 작품의 특징으로 밝게 빛나는 사물과
어두운 배경의 우아한 대비를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경의 어둠은 단순히 빈 곳이 아니다.
꽃의 가느다란 줄기를 보이게 하고 투명한 유리잔의 윤곽을 드러내며
금속 표면의 반짝임을 강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빛은 모든 곳에 똑같이 퍼지지 않는다.
필요한 곳에 걸린다.
그래서 사물 하나하나가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에는 탁자 왼쪽 아래를 찾아보자
그림을 거의 다 봤다면 왼쪽 아래 모서리로 시선을 옮겨보자.
여기에 화가가 직접 남긴 흔적이 있다.
CLARA . P . Aº . 1611 .
페테르스의 서명과 제작연도다. 프라도의 작품 기록에서도
화면 왼쪽 아래에 서명과 연도가 적혀 있음이 확인된다.
이제 다시 화면 중앙의 금빛 잔을 본다.
한쪽에는 이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얼굴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화가의 존재가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크게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얼마나 세밀하게 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드러운 꽃잎과 단단한 금속을 구별하고, 투명한 유리와 불투명한 주석을 구별한다.
말린 과일의 주름과 과자의 표면도 놓치지 않는다.
금속에 반사되는 빛을 그리다가 그 안에 자기 얼굴까지 넣는다.
이 그림 앞에서는 무엇이 가장 비싼 물건인지부터 찾을 필요가 없다.
왼쪽 꽃에서 출발해보면 된다.
꽃병 아래로 내려와 탁자 위에 떨어진 꽃을 따라간다.
흰 그릇에서 잠시 멈추고, 가운데 금빛 잔을 위아래로 살펴본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 다가가 그 표면에 숨어 있는 작은 얼굴을 찾는다.
그다음 붉은 포도주와 어두운 주전자를 지나 오른쪽 아래의 과자와 빵까지 간다.
마지막에는 몇 걸음 물러나 다시 전체를 본다.
처음에는 그저 물건이 많은 식탁이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다르게 보인다.
꽃은 부드럽고, 유리는 투명하고, 금속은 차갑고, 과자는 거칠다.
같은 빛도 물건마다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 모든 차이를 관찰하고 있던 사람이 있다.
화면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클라라 페테르스다.
그녀를 찾으려면 그림 속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이 정물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