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62편 수르바란 《그릇이 있는 정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림이 특별해진 순간

 프라도 미술관에서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그릇이 있는 정물》을 

만나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성인도 없고, 왕도 없고, 신화 속 영웅도 없다. 극적인 사건은 더더욱 없다. 

어두운 공간에 몇 개의 그릇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릇들의 존재감이 너무 강하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그릇이 있는 정물》, 약 1650년, 프라도 미술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그릇이 있는 정물》


마치 누군가가 일상의 물건들을 모두 치운 뒤, 

꼭 필요한 것 네 개만 골라 조용히 무대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

17세기 스페인에서 이런 그림은 왜 탄생했을까.

그리고 수도원과 종교화를 떠올리게 하는 화가 수르바란은 

왜 평범한 그릇을 이렇게 진지하게 바라보았을까.


그릇 몇 개뿐인데 이상하게 눈을 붙잡는다


이 그림은 수르바란이 1650년 무렵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기도 그리 크지 않다. 

세로 46cm, 가로 84cm 정도다. 

그런데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실제 크기보다 

훨씬 묵직하게 느껴진다.

화면에 등장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다.

탁자 위에 그릇 몇 개가 놓여 있다.

사람도 없고, 음식도 없고, 꽃도 없다.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릇 하나하나가 사람처럼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그냥 옛날 스페인의 생활용품인가 싶다.

그런데 조금 알아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비야에서 만든 도기도 있고, 멀리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것으로 

여겨지는 그릇도 있다. 

겉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그림인데, 

그 안에 17세기 스페인의 생활과 교역의 흔적이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그릇의 모양부터 들여다보기 전에 

수르바란이 살았던 시대를 조금 알고 보면 훨씬 재미있어진다.

왜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이런 평범한 물건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그리고 평생 수많은 성인과 수도자를 그렸던 수르바란은 

왜 어느 날 사람을 모두 치우고 그릇 몇 개만 남겨놓았을까.

이 두 가지를 알고 나면 처음에는 너무 단순해 보였던 

그림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17세기 스페인에서 그릇도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늘날 정물화는 너무 익숙하다.

과일 몇 개, 꽃병 하나, 컵과 접시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림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서양미술에서 사물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그림이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긴 역사를 놓고 보면 비교적 늦은 일이다.

특히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여러 지역에서 정물화가 크게 성장했다.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에서는 풍성한 음식과 값비싼 식기, 

꽃과 과일을 가득 펼쳐놓은 화려한 정물화가 발전했다.

스페인에서도 독특한 정물화 전통이 형성됐다. 

스페인어로 흔히 ‘보데곤(bodegón)’이라고 부르는 그림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한다. 

스페인의 정물화가 모두 검소하고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프라도 역시 스페인 정물화를 단순함과 본질의 추구만으로 

설명해온 미술사적 관점이 실제 스페인 정물화의 다양한 경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수르바란의 이 작품만 놓고 보면 절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분명하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도 없다.

활짝 핀 꽃도 없다.

사냥한 짐승도 없다.

값비싼 물건을 화면 가득 쌓아놓지도 않았다.

물건의 수를 줄이고, 물건과 물건 사이를 비워놓는다.

그 비어 있는 공간 때문에 오히려 하나하나의 사물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종교화가 수르바란이 정물화를 그렸다는 것


수르바란은 정물화만 그리던 화가가 아니다.

1598년 에스트레마두라의 푸엔테 데 칸토스에서 태어나 

세비야에서 화가로 성장했고, 

특히 수도회와 수도원을 위한 종교화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다. 

프라도 역시 그를 수도원적 종교화와 강하게 연결되는 화가로 설명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성인이나 수도자가 화려한 공간을 지배하기보다 

어둠 속에서 하나의 단단한 존재처럼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옷감 하나도 대충 처리하지 않는다. 

수도복의 두꺼운 천, 흰옷의 미묘한 색 변화, 손과 얼굴에 떨어지는 빛을 

아주 구체적인 물질처럼 그려낸다.

그래서 수르바란의 종교화와 정물화는 주제는 달라도 묘하게 연결된다.

사람을 그릴 때도 하나의 인물을 주변에서 떼어내듯 바라보고, 

사물을 그릴 때도 각각의 물건을 독립된 존재처럼 다룬다. 

프라도 역시 수르바란이 인물이든 사물이든 각각의 모티프를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듯 제시하면서 세부를 세심하게 묘사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그릇이 있는 정물》이 낯설면서도 수르바란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가에게 그릇은 화면을 채우는 소품이 아니었다.

하나씩 바라볼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그릇들은 정말 가난한 집의 물건일까


그림이 워낙 소박해서 흔히 검소한 스페인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그림의 물건들이 

반드시 서민적인 생활용품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특히 금도금된 은제품으로 추정되는 정교한 잔과 

아메리카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용기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집안의 식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서 17세기 스페인의 더 넓은 세계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세비야는 대서양 무역과 긴밀하게 연결된 도시였다. 

스페인 제국과 아메리카 식민지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였고, 

유럽과 신대륙에서 온 물건과 사람들이 오갔다.

따라서 화면 한가운데 놓인 이국적인 용기를 

단순한 ‘옛날 항아리’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생긴다.

프라도는 그것을 당시 ‘인디아스의 부카로(búcaro de Indias)’라고 

불리던 종류로 설명하며,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 

아마도 오늘날 멕시코의 토날라와 관련된 물건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반면 다른 도기들은 세비야의 트리아나와 연결된다.

한 화면 안에 세비야의 지역 공예와 대서양 건너에서 들어온 물건이 함께 있는 셈이다.

겉으로는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조용한 그림인데, 

그릇의 출신지를 따라가면 오히려 17세기 스페인의 넓은 교역망이 보인다.


화려한 바로크 시대에 등장한 이상할 만큼 조용한 그림


수르바란은 스페인 바로크 시대의 화가다.

그런데 ‘바로크’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화려함과 

격렬한 움직임만 떠올리면 이 그림을 이해하기 어렵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에는 여러 얼굴이 있었다.

강렬한 빛과 어둠의 대비도 있었고, 극적인 종교적 감정도 있었으며, 

현실의 물질을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보여주려는 관심도 있었다.

수르바란은 특히 마지막 두 요소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합했다.

평범한 사물도 빛을 받으면 갑자기 특별한 존재가 된다.

중요한 것은 사물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집중해서 보여주는가다.

그래서 《그릇이 있는 정물》을 ‘소박한 정물화’라는 말 하나로 끝내기 어렵다.

화려한 장식을 버렸기 때문에 가난해 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제거했기 때문에 물건의 존재가 더 선명해진 그림에 가깝다.


죽음도, 시계도, 시드는 꽃도 없다


17세기 정물화를 볼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니타스(vanitas)’다.

인간의 부와 쾌락은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해골이나 시계, 

꺼져가는 촛불, 시드는 꽃 같은 사물로 환기하는 그림을 말한다.

그래서 오래된 정물화를 만나면 모든 사물에서 죽음의 상징부터 찾으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릇이 있는 정물》에서는 그렇게 접근할 필요가 없다.

프라도 역시 이 작품의 독특한 특징으로 

시간의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꽃이나 음식처럼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없고, 

죽음을 알리는 해골도 없으며, 시간의 흐름을 직접 보여주는 시계도 없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곧바로 “인생의 허무를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단정하면 

작품보다 해석이 앞서가게 된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그 반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릇은 썩지 않는다. 시들지도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프라도가 이 작품을 설명하며 

강조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간의 부재’다. 

그림 속 세계는 특정한 순간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시간이 잠시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종교적인 명상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특정한 종교적 상징 체계로 확정할 필요는 없다.

수르바란은 그릇만으로도 충분히 침묵을 만들어냈다.


정물화인데 정물화의 규칙에서도 조금 벗어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그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게 계산된 기하학적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에는 수르바란의 엄격한 구성과 질서를 보여주는 

대표작처럼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네 개의 주요 물체가 나란히 놓인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단정해 보인다.

하지만 프라도는 작품을 자세히 분석하면서 원근법과 

기하학의 규칙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한다. 

물건들이 정확하게 한 축에 정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수르바란은 복잡한 공간을 완벽한 원근법으로 구축하는 데 

강점을 가진 화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약간의 어긋남이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힘이 된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공간을 만들기보다 

각 사물이 가장 강하게 존재할 수 있는 위치를 찾은 듯하다.

이 문제는 실제 그림 앞에서 보면 더 재미있다.

왜 그릇들이 나란히 있는데도 서로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 

왜 각각의 물건이 따로따로 바라봐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프라도의 그림과 거의 같은 그림이 하나 더 있다


《그릇이 있는 정물》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하나 더 있다.

거의 동일한 구도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

현재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프라도는 그쪽 작품이 보존 상태도 다소 더 좋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두 작품의 현대 소장 이력에는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카탈루냐의 정치가이자 수집가였던 프란세스크 캄보다.

프라도 소장본은 그의 기증으로 1940년 미술관에 들어왔다. 

프라도의 공식 작품 기록에도 이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스페인 왕실 컬렉션에서 

자연스럽게 프라도로 넘어온 작품이 아니다.

개인 수집가의 소장품을 거쳐 20세기에 프라도 컬렉션에 합류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프라도의 스페인 정물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 되었다.


그릇 네 개가 보여주는 수르바란의 세계


이제 다시 그림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자.

화면에는 거대한 사건이 없다.

누군가의 영웅적인 행동도 없다.

인간의 얼굴조차 없다.

그런데 수르바란은 평범한 물건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값비싼 것과 소박한 것, 세비야에서 만들어진 것과 

대서양 건너에서 온 것이 같은 공간에 놓인다. 

그 어느 것도 다른 물건의 배경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17세기 유럽의 정물화가 풍요와 감각적 즐거움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발전할 때, 수르바란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적게 놓는다.

서로 떨어뜨린다.

주변을 비운다.

그리고 오래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그릇이 있는 정물》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숨겨진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먼저 “왜 이 평범한 물건들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가”를 생각해보는 편이 좋다.

수르바란은 평범한 사물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를 지웠다.

사람도 지우고, 사건도 지우고, 풍경도 지우고, 시간의 흔적마저 거의 지웠다.

그러고 나니 마지막에 남은 것은 물건 자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림인데도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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