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잠깐 쉬어가기'에서는 르네상스가 왜 끝나고 바로크가 시작되었는지 함께 살펴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균형과 조화를 추구했다.

반면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렇다면 바로크 화가들은 어떻게 관람자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답을 보여주는 화가가 바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이다.

루벤스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 화가가 아니다.

그는 슬픔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슬픔을 직접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표작이 바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이다.


루벤스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처음 이 작품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수의 몸이다.

십자가에서 막 내려오는 순간이기 때문에 이미 생명은 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화면은 조용하지 않다.

오히려 금방이라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것 같은 긴장감이 가득하다.

이것이 바로 바로크 미술의 시작이다.

르네상스였다면 예수는 조금 더 안정적이고 차분한 자세로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루벤스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선택했다.

십자가 위에서도 아니고, 무덤에 안치된 순간도 아니다.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예수의 몸을 내려놓는 바로 그 찰나다.

바로크 화가들은 항상 이렇게 '가장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선택했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는 전체를 보기보다 먼저 네 부분을 차례대로 바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첫 번째, 흰 천을 따라가 보자.


구도상 보이는 부드러운 s자

예수의 몸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흰 천은 단순한 천이 아니다.

천은 화면의 왼쪽 위에서 시작해 오른쪽 아래까지 부드러운 S자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우리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 움직인다.

르네상스가 안정된 삼각형 구도를 좋아했다면, 루벤스는 곡선을 이용해 화면 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치 예수의 몸이 지금도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림이 정지되어 있는데도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바로크의 힘이다.


두 번째, 사람들의 손을 바라보자.


그림에서 나타나는 손은 모두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를 붙잡고 있는 손은 모두 다르다.

어떤 손은 무게를 버티고 있고,

어떤 손은 조심스럽게 몸을 받치고 있으며,

어떤 손은 마지막으로 예수를 놓지 않으려는 듯 붙잡고 있다.

얼굴보다 손이 먼저 감정을 이야기한다.

루벤스는 손끝 하나에도 슬픔과 긴장을 담아냈다.

조용한 장면인데도 손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전해진다.


세 번째, 마리아의 얼굴을 보자.


마리아의 얼굴에서 절규하지 않아 더 깊어진 감정을 표현한다.


이 그림에는 크게 울부짖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보는 사람은 슬픔을 느낀다.

마리아는 절규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슬픔을 참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루벤스는 눈물보다 절제를 선택했다.

그래서 오히려 감정은 더 깊어진다.

여기서 루벤스는 르네상스의 차분함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바로크 특유의 감정을 더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이것이 루벤스가 바로크를 대표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네 번째, 빛을 살펴보자.

이 작품의 빛은 아직 카라바조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이미 중요한 인물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흰 천과 예수의 몸은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빛은 단순히 화면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 만나게 될 카라바조는 이 빛을 더욱 극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