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는 세계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이 수없이 많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명화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을 선택할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 앞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작품 앞에 잠시 멈춰 선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누군가는 그림 속 기묘한 동물들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확대하며 세세한 부분을 살펴본다.
나 역시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도대체 500여 년 전 화가가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을까.
시대를 너무 앞서간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정원》을 그린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1450년경 현재의 네덜란드 지역에서 태어난 화가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쉬가 활동했던 시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거의 비슷한 시대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다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보쉬의 작품 속에는 기괴한 괴물과 상상 속 동물,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건축물과 수많은 상징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미술사가들은 보쉬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른다.
실제로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 화가들이 보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세 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거대한 제단화
《쾌락의 정원》은 세 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삼면화(Triptych)이다.
참고로 이번 글에 사용한 작품 사진은 오랫동안 스페인 현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프라도 미술관을 안내해 온 김한준 가이드님이 직접 촬영해 보내준 사진이다.
일반 관람객이 담기 어려운 작품 전체의 구성이 잘 드러나 있어 보쉬가 의도한 삼면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김한준 가이드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 밝혀둔다.
왼쪽 패널은 에덴동산, 중앙 패널은 인간 세상, 오른쪽 패널은 지옥을 표현하고 있다.
왼쪽에는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나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중앙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등장하며 작품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복잡한 장면이 펼쳐진다.
| [쾌락의 정원] 김한준가이드님이 제공해주신 사진 |
그리고 오른쪽에는 어둡고 기괴한 지옥 세계가 묘사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순수했던 인간은 결국 욕망에 빠지고, 그 결과 지옥이라는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보쉬는 작품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학자들이 이 그림의 진짜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림을 닫으면 또 다른 작품이 나타난다
《쾌락의 정원》의 가장 놀라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림을 접었을 때 나타난다.
제단화를 닫으면 화려했던 내부 그림은 사라지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등장한다.
회색빛 단색조로 그려진 구형의 세계가 나타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성경 속 천지창조의 셋째 날 장면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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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락의 정원을 닫았을때의 모습 필자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다. 프라도미술관에서 35유로를 주고 구입한 책에서 찍은 사진이다 |
아직 인간과 동물이 탄생하기 이전, 하나님이 땅과 바다를 창조한 직후의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내부가 화려한 색채로 가득 차 있다면 외부는 놀랄 만큼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보쉬는 마치 세상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작품 안에 담아낸 듯하다.
처음에는 텅 빈 세상으로 시작하지만, 인간은 욕망과 쾌락을 거쳐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거대한 이야기가 작품 전체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까
《쾌락의 정원》이 특별한 이유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 교훈을 읽어내고, 어떤 사람은 인간 욕망에 대한 풍자라고 해석한다. 또 어떤 이는 인간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정답은 아직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점이다.
"보쉬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바로 《쾌락의 정원》이 지금까지도 프라도 미술관 최고의 미스터리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나 역시 다음에 프라도 미술관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 작품 앞으로 향할 것 같다.
예전에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는 작품이 워낙 크고 관람객도 많아 전체를 한 화면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김한준 가이드님이 촬영한 사진을 다시 살펴보면서,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세부 장면들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싶다.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본다면 가장 먼저 어떤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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