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74편 루벤스 《사랑의 정원》, 전쟁과 외교를 지나 사랑의 정원으로

루벤스의 《사랑의 정원》은 재혼 이후 인생 후반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사랑과 결혼, 신화적 상징이 어우러진 이 그림의 제작 배경과 티치아노의 영향, 루벤스 후기 회화의 변화를 살펴본다.

 앞선 72편과 73편에서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을 만났다. 

74편도 루벤스 연속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꽤 달라진다. 

《파리스의 심판》에서 

아름다운 세 여신 앞에 선 파리스가 선택의 대가를 알지 못한 채 

황금 사과를 건넸다면, 이번에는 사랑 때문에 벌어질 전쟁도, 신들의 경쟁도 없다.

이번 작품은 《사랑의 정원》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사랑의 정원(The Garden of Love)》, 1630~1635년경, 캔버스에 유채, 199 × 286cm, 프라도 미술관 소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사랑의 정원(The Garden of Love)》


루벤스가 인생의 후반기에 그린 그림 가운데 유난히 행복한 기운이 가득한 작품이다. 

사랑의 신들이 인간들 사이로 내려오고, 현실의 사람들이 신화 속 세계에 들어간 듯 어울린다.

그런데 이 그림을 단순히 “사랑에 빠진 남녀들의 즐거운 모임”으로 보면 절반만 보는 셈이다.

루벤스가 이 그림을 그린 1630년대 초, 

그의 삶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왕실과 외교의 세계를 오가던 화가가 다시 결혼했고, 

젊은 아내 헬레나 푸르망과 함께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그래서 《사랑의 정원》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전쟁과 외교, 그리고 화려한 궁정의 세계를 지나온 

루벤스가 왜 인생의 후반부에 이런 행복한 사랑의 세계를 그렸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1630년대, 루벤스의 삶이 달라지다

이 시기의 루벤스는 이미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화실에 앉아 그림만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앞선 루벤스 편에서 살펴봤듯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여러 유럽 궁정을 

연결하는 외교 활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특히 1620년대 후반에는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마드리드와 런던을 오갔다.

그에게 궁정은 그림을 주문받는 장소인 동시에 정치와 외교가 움직이는 현장이었다.

그런 루벤스에게 1630년은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그해 12월, 쉰세 살의 루벤스는 열여섯 살의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다.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가 세상을 떠난 지 약 4년 뒤였다. 

프라도 미술관 역시 이 재혼 이후 

루벤스의 작품에 개인적인 사랑과 행복이 강하게 스며들었다고 설명한다.

《사랑의 정원》은 바로 그 변화와 가까운 곳에 있는 작품이다.


신화가 아니라 루벤스 자신의 삶에 가까워진 그림

여기서 재미있는 차이가 생긴다.

앞서 본 《파리스의 심판》은 고대 신화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등장인물에게 이름이 있고, 사건이 있고, 그 사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도 있다.

《사랑의 정원》은 그렇게 읽기 어렵다.

고대 신화의 특정 사건을 그대로 옮긴 그림이라기보다, 

현실의 우아한 남녀와 사랑을 상징하는 신화적 존재들이 한 공간에 섞여 있는 

사랑의 우화에 가깝다.

프라도 미술관도 이 작품을 고대 문학과 르네상스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사랑과 삶의 기쁨을 표현한 이미지로 설명한다. 

특히 루벤스에게 중요한 선배 화가는 티치아노였다.

루벤스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젊은 시절부터 베네치아 회화를 깊이 공부했다.

그 가운데 티치아노가 보여준 풍부한 색채와 육체의 감각, 

신화와 현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세계는 평생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사랑의 정원》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부드럽게 나타난다.

프라도 미술관은 특히 티치아노의 《안드로스 섬의 바쿠스 축제》와 

《비너스에게 바치는 경배》를 이 작품과 연결한다. 

신화적인 존재와 현실적인 인물이 함께 등장하고, 비너스가 사랑의 세계를 지배하며, 

자연과 음악과 관능적인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하지만 루벤스는 티치아노의 세계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그것을 자기 시대의 사람들, 그리고 자기 삶에 가까운 세계로 끌어왔다.


사랑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달라졌다

루벤스에게 헬레나와의 결혼은 단순한 전기적 사실 하나가 아니다.

그 이후 그의 작품에는 이전과 조금 다른 종류의 친밀함이 나타난다.

웅장한 제단화나 정치적 알레고리, 

격렬한 신화화에서 볼 수 있었던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다. 

가족, 정원, 풍요로운 자연, 젊은 여성의 육체, 결혼과 사랑 같은 주제가 

그의 개인적인 삶과 더욱 가까워진다.

프라도가 소장한 《삼미신》도 

이 시기 루벤스의 변화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헬레나와의 결혼 이후 루벤스가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은 

여성상을 여러 작품에 등장시켰다고 설명한다. 

《삼미신》과 《사랑의 정원》은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개인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꼽힌다.

《사랑의 정원》에서도 푸른 옷을 입은 여성 가운데 한 명은 

당시 그의 아내였던 헬레나 푸르망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다만 그림 속 모든 인물을 실제 인물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프라도의 설명 역시 헬레나와의 닮은 모습을 지적하면서 

작품 전체를 루벤스의 개인적인 삶과 연결한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현실과 신화의 경계가 흐려진다.

실제 아내를 닮은 여성이 있고, 

당대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공간에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관련된 조각과 사랑의 신들이 함께한다.

마치 현실의 결혼과 사랑이 신화 속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세계다.


왜 하필 ‘정원’일까

정원이라는 공간도 그냥 아름다운 배경으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유럽 문화에서 정원은 오랫동안 자연과 인간의 질서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특히 사랑을 다루는 문학과 미술에서는 연인들이 만나고 

음악과 대화를 즐기는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루벤스는 여기에 자신의 경험까지 더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건축 공간은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식 건축을 떠올리게 하는데, 

프라도 미술관은 이것을 루벤스가 

1622년에 출판한 건축서 《제노바의 궁전들》에서 다뤘던 건축과 연결한다.

 더 나아가 루벤스가 안트베르펜에 지은 자신의 저택에서도 비슷한 

이탈리아적 건축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점 때문에 《사랑의 정원》은 더욱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배경은 완전히 허구적인 신들의 세계도 아니고, 

특정 장소를 사실적으로 기록한 풍경도 아니다.

루벤스가 사랑했던 이탈리아 문화와 고전 신화, 자신이 살던 플랑드르의 현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생활이 서로 겹쳐 만들어진 이상적인 공간에 가깝다.

그곳에서는 현실의 사람들이 신화 속 인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바로크 화가가 그린 ‘행복’

루벤스라고 하면 흔히 거대한 몸, 격렬하게 뒤틀린 자세, 휘몰아치는 구도부터 떠올린다.

그것도 루벤스의 바로크다.

하지만 《사랑의 정원》은 바로크가 반드시 전쟁과 순교, 

폭력과 극적인 사건만을 그리는 미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루벤스 특유의 풍요로움은 여기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사랑하고, 이야기하고, 음악을 듣고, 자연을 즐기는 삶 자체가 화면을 채운다. 

고대 신화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신화와 현실을 굳이 분리하려 하면 오히려 그림의 매력을 놓치게 된다.

루벤스가 만들고 싶은 세계에서는 두 영역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인간의 사랑이 신화가 되고, 신화 속 사랑이 현실의 결혼과 행복을 비춘다.


티치아노에게서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다

《사랑의 정원》은 루벤스와 티치아노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루벤스는 티치아노를 단순히 모방한 화가가 아니었다.

선배 화가의 작품에서 색채와 육체, 자연과 신화가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17세기 플랑드르의 감각으로 다시 만들어냈다.

프라도는 《사랑의 정원》에서 

루벤스가 베네치아 거장의 영향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고 평가한다.

이 말은 꽤 중요하다.

젊은 루벤스가 이탈리아 미술을 열심히 공부하던 단계와 달리, 

1630년대의 루벤스는 이미 유럽 미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제 그는 티치아노에게서 배운 것을 자신의 사랑과 경험, 자신의 시대에 맞게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랑의 정원》은 고전 신화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17세기의 세계이고, 

티치아노를 기억하게 하면서도 unmistakably 루벤스의 그림이다.


왕의 침실에 걸렸던 사랑의 그림

이 작품이 어떻게 스페인 왕실에 들어갔는지 정확한 최초 경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1666년 마드리드 왕궁 알카사르의 왕실 소장품 기록에는 이미 등장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림이 놓였던 장소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왕이 세상을 떠난 방에 있었고, 

1686년과 18세기 초 기록에서는 왕이 잠을 자던 방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부엔 레티로 궁전과 새 왕궁 등을 거쳐 왕실 컬렉션에 계속 남았고, 

훗날 프라도 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옛 왕실 목록에서는 이 작품을 

루벤스 가족과 사랑을 연결한 그림으로 이해한 흔적도 발견된다. 

오늘날처럼 정확한 미술사적 해석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 작품에서 단순한 신화 이상의 개인적인 분위기를 느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루벤스가 도착한 또 하나의 세계

72편과 73편의 《파리스의 심판》에서 사랑은 선택이었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를 결정해야 했고, 그 선택에는 욕망과 경쟁이 따라붙었다.

《사랑의 정원》에서는 사랑의 모습이 달라진다.

누군가를 심판할 필요도 없고, 세 여신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야 할 이유도 없다. 

사랑은 이미 인간들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

이 차이는 루벤스의 후기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된다.

쉰을 넘긴 화가는 젊은 아내와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왕과 귀족을 상대하고, 

전쟁 중인 국가 사이를 오가며 외교 임무를 수행했던 시간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루벤스는 사랑과 자연과 풍요를 이전보다 

훨씬 개인적인 언어로 그리기 시작했다.

《사랑의 정원》은 그 변화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프라도에서 이 거대한 그림 앞에 섰을 때 

처음부터 작은 사랑의 신이나 인물 하나하나를 찾을 필요는 없다.

먼저 한 걸음 떨어져 전체를 바라보면 된다.

루벤스는 현실의 정원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다.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고대 문화와 티치아노의 회화, 

이탈리아 건축에 대한 기억, 17세기 플랑드르의 우아한 생활, 

그리고 인생 후반에 다시 찾아온 사랑을 한 장소에 모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사랑의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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