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85편 후안 반 데르 아멘 《아티초크·꽃·유리그릇이 있는 정물》 세부 감상, 화려한 꽃 아래 숨겨진 또 하나의 아름다움

후안 반 데르 아멘의 《아티초크·꽃·유리그릇이 있는 정물》 세부 감상. 꽃과 채소, 투명한 유리그릇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살펴본다.

후안 반 데르 아멘, 《아티초크·꽃·유리그릇이 있는 정물》. 화려한 꽃과 평범한 채소가 어우러진 정물화.
후안 반 데르 아멘 작《아티초크·꽃·유리그릇이 있는 정물》


꽃이 가득 꽂힌 유리병이 있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아티초크 두 개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체리와 여러 개의 유리그릇이 자리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나 동물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면 이상하게 눈길이 오래 머문다.

처음에는 화려한 꽃들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투명한 유리그릇과 평범한 채소까지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후안 반 데르 아멘의 《아티초크·꽃·유리그릇이 있는 정물》은 바로 이런 그림이다.

앞선 84편에서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그림 앞에 직접 서 있다고 생각하고 꽃과 채소, 유리그릇을 하나씩 감상해 보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커다란 꽃병

그림을 처음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중앙의 커다란 꽃병으로 시선이 향한다.

여러 종류의 꽃이 한데 모여 풍성한 꽃다발을 이루고 있다.

꽃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

어떤 꽃은 위를 향해 활짝 피어 있고, 어떤 꽃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꽃다발 가장자리에서는 줄기와 잎들이 바깥쪽으로 뻗어 나간다.

덕분에 꽃다발은 단순히 둥글게 뭉쳐 있는 모습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 꽃의 색깔을 하나씩 살펴보자.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과 보라색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꽃의 색깔이 한쪽에만 몰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푸른 붓꽃은 두 송이가 서로 다른 위치에 놓여 있고, 

붉은 튤립과 노란 튤립도 각각 두 송이씩 등장한다.

꽃다발 가운데에는 연보라색 아네모네 두 송이가 자리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의 식물 감상 자료에서도 

이러한 꽃들의 색채가 서로 대응하도록 배치된 점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계열의 색깔이 꽃다발 곳곳에서 반복되기 때문에 

꽃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한쪽에 붉은색이 보이면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색을 발견할 수 있고, 

푸른색 역시 꽃다발의 여러 부분에서 눈에 들어온다.

마치 화가가 꽃을 하나씩 꽂으면서 

어느 한쪽으로 색깔이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 쓴 것처럼 느껴진다.

꽃다발을 감상할 때는 개별 꽃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이러한 색깔의 반복도 함께 살펴보면 좋다.


꽃다발 속에서 발견하는 서로 다른 꽃들의 표정


붉은 튤립과 푸른 붓꽃 등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진 꽃다발. 꽃잎의 형태와 색채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꽃다발과 유리 꽃병

이번에는 꽃다발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꽃마다 꽃잎의 모양과 펼쳐진 방향이 다르다.

튤립은 꽃잎이 위로 모이면서 잔처럼 생긴 형태를 이루고 있다.

반면 붓꽃은 꽃잎이 바깥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 튤립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가운데 자리한 아네모네는 비교적 넓게 펼쳐진 꽃잎으로 

주변의 꽃들과 또 다른 형태를 만들어낸다.

화가는 이렇게 서로 다른 꽃의 생김새를 하나의 꽃다발에 담았다.

모든 꽃을 비슷한 모양으로 그렸다면 

지금처럼 풍성하고 다양한 느낌을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꽃다발 아래쪽으로 시선을 내리면 거의 둥근 공처럼 생긴 흰색 꽃송이들도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꽃들이 한데 모여 둥근 덩어리를 이루는 모습이다.

이 꽃은 백당나무의 한 종류로, 꽃송이 전체가 공처럼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화가는 커다란 꽃잎을 가진 꽃과 작은 꽃들이 모여 

이루어진 꽃송이를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 덕분에 꽃다발은 색깔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다양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그림 전체를 다시 바라보자.

커다란 꽃병은 여러 종류의 꽃으로 가득 차 있지만, 

어느 한 송이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지는 않다.

각각의 꽃이 자기만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커다란 꽃다발을 완성하고 있다.


오른쪽 위, 작은 유리병에 담긴 분홍 장미

중앙의 커다란 꽃병을 충분히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그림 오른쪽 위로 시선을 옮겨보자.

높은 받침대 위에 작은 유리병이 하나 놓여 있다.

그 안에는 분홍빛 장미들이 꽂혀 있다.

중앙의 꽃다발이 여러 종류의 꽃과 다양한 색깔로 화려함을 보여준다면, 

이 작은 꽃병은 훨씬 차분한 느낌을 준다.

꽃의 종류도 적고 색깔도 비교적 단순하다.

그렇다고 이 장미들이 그림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작은 것은 아니다.

커다란 꽃다발이 그림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면, 

오른쪽 위의 작은 꽃병은 시선을 화면의 가장 높은 곳까지 이끌어준다.

두 꽃병을 번갈아 바라보면 높이와 크기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는 크고 풍성하며, 다른 하나는 작고 단정하다.

서로 비슷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장미의 꽃잎도 자세히 살펴보자.

꽃잎은 단순히 분홍색 한 가지로 칠해져 있지 않다.

빛을 받는 부분은 밝게 표현되어 있고, 

꽃잎이 겹쳐지는 안쪽에는 조금 더 진한 색이 들어가 있다.

이러한 색의 차이 덕분에 꽃잎이 얇게 겹쳐진 모습과 부드럽게 말려 들어가는 형태가 드러난다.

평평한 화면 위에 그려진 장미인데도 실제 꽃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화려한 꽃 아래에 놓인 두 개의 아티초크


겹겹이 포개진 아티초크의 꽃봉오리와 넓게 펼쳐진 잎. 평범한 채소의 형태까지 세심하게 표현했다.
아티초크와 잎 확대

이제 시선을 중앙의 커다란 꽃병 아래로 내려보자.

그곳에는 아티초크 두 개와 커다란 잎들이 놓여 있다.

아티초크는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채소지만, 

지중해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재료로 사용해 왔다.

우리가 흔히 먹는 배추나 양배추와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둥글고 두툼한 부분을 여러 겹의 잎처럼 생긴 조각들이 감싸고 있다.

이 부분은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다.

그림 속 아티초크를 자세히 살펴보면 

바깥쪽 조각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빛을 받아 밝게 보이고, 겹쳐진 안쪽은 어둡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밝고 어두운 부분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아티초크 특유의 단단하고 묵직한 형태가 드러난다.

꽃잎이 부드럽게 펼쳐지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있다.

화가는 화려한 꽃을 그릴 때만 정성을 들인 것이 아니다.

아티초크의 겹겹이 포개진 부분과 주변의 커다란 잎들도 세심하게 표현했다.

프라도 미술관 역시 꽃과 아티초크의 잎이 모두 정교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티초크 주변으로 펼쳐진 잎을 살펴보면 

잎의 가장자리가 매끄러운 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잎은 불규칙하게 갈라지고 구부러져 있으며, 

넓은 표면에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함께 나타난다.

꽃다발에서는 색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면, 

아티초크에서는 겹쳐진 형태와 잎의 질감이 눈길을 끈다.

두 소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투명한 유리병은 어떻게 그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까?

이번에는 꽃과 채소에서 잠시 눈을 떼고 유리그릇을 살펴보자.

그림 속 유리병은 꽃처럼 화려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리는 투명하기 때문에 주변의 색과 빛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화가는 투명한 물건을 어떻게 그렸을까?

유리병의 윤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답을 발견할 수 있다.

유리병 전체를 똑같은 색으로 칠한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와 굴곡진 부분에 밝은 빛을 표현했다.

어떤 부분은 희미하게 빛나고, 어떤 부분은 주변의 어두운 색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곳에 유리병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린다.

빛나는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연결되면서 투명한 유리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유리병의 입구와 목 부분을 살펴보면 유리의 두께와 굴곡에 따라 

빛이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병의 몸체에서도 빛이 반사되는 부분과 어둡게 보이는 부분이 서로 어우러진다.

화가는 유리병을 단순히 투명한 물건으로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빛이 유리 표면에 닿았을 때 나타나는 

작은 변화를 이용해 단단하고 매끄러운 질감까지 보여주었다.

꽃잎의 부드러움과 유리의 단단함을 번갈아 감상하면 

두 소재의 차이가 더욱 분명하게 느껴진다.


작은 체리 접시가 만드는 또 하나의 볼거리

그림의 높은 받침대 위에는 체리가 담긴 접시도 놓여 있다.

꽃과 아티초크가 크고 풍성한 형태를 보여준다면, 체리는 작고 둥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작은 열매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커다란 꽃다발이나 아티초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체리의 붉은색은 주변의 차분한 색깔과 대비를 이룬다.

체리가 담긴 접시 역시 그림의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접시가 놓인 곳을 살펴보면 받침대의 앞쪽 가장자리가 접시에 가려져 있다.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면 접시 양옆으로 

이어지는 받침대의 선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러한 부분을 근거로 그림 속 

받침대가 실제로 존재했던 구조물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닐 가능성을 설명한다.

처음 그림을 볼 때는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접시 양옆의 선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화가가 각각의 사물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화면을 구성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모든 사물이 실제로 하나의 공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림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화가가 여러 사물을 선택하고 배치하여 완성한 하나의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높이에 놓인 사물들

이번에는 꽃과 채소에서 조금 떨어져 그림 전체를 바라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물들이 놓인 받침대의 구조다.

모든 물건이 하나의 평평한 탁자 위에 놓여 있지 않다.

높이가 다른 여러 단의 받침대 위에 꽃병과 채소, 접시와 유리그릇이 나누어져 있다.

중앙의 커다란 꽃병과 아래쪽 아티초크는 위아래로 이어지는 구성을 만든다.

오른쪽 위의 작은 꽃병은 그림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사물들도 각각의 높이에 놓이면서 화면 전체에 변화를 준다.

만약 모든 물건을 같은 높이에 나란히 놓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시선이 위아래로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가는 받침대의 높이를 다르게 만들어 관람자의 눈이 그림 곳곳을 이동하도록 했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서로 다른 사물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서도 

각자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서 받침대 자체를 살펴보면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꽃과 채소는 형태와 색깔이 매우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받침대는 비교적 단순한 회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표면의 장식이나 재질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았다.

덕분에 받침대보다 그 위에 놓인 사물들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받침대는 그림의 주인공이라기보다 꽃과 채소, 

유리그릇이 돋보이도록 만들어진 무대처럼 느껴진다.


검은 배경은 왜 이렇게 넓게 남겨 두었을까?

그림의 배경을 바라보면 꽃과 채소 뒤로 어두운 공간이 펼쳐져 있다.

창문도 없고, 멀리 보이는 풍경도 없다.

주변에 다른 가구나 장식품이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배경이 단순하기 때문에 꽃의 색깔과 유리그릇의 밝은 부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중앙의 꽃다발을 다시 바라보자.

꽃다발 뒤에 화려한 벽지나 복잡한 풍경이 있었다면 

꽃의 형태를 지금처럼 쉽게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배경 앞에서는 꽃잎의 윤곽과 줄기의 방향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아티초크 역시 마찬가지다.

짙은 배경과 밝은 받침대 사이에 놓인 채소의 형태가 분명하게 보인다.

유리그릇은 어두운 배경 덕분에 빛이 반사되는 부분을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배경이 비어 있다고 해서 그림이 허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빈 공간이 꽃과 채소 사이에 여유를 만들어준다.

그림 속 물건들이 서로 지나치게 붙어 보이지 않고, 각각의 형태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꽃과 채소를 다시 한번 비교해 보자

이제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위치에서 다시 감상해 보자.

처음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티초크의 겹쳐진 부분과 잎의 형태를 충분히 살펴본 뒤라면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색채와 부드러운 꽃잎에서 드러난다.

반면 아티초크의 아름다움은 단단한 형태와 겹겹이 포개진 구조, 

불규칙하게 펼쳐진 잎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화가는 두 가지 모두를 정성스럽게 그렸다.

그림 속에서 꽃이 채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꽃은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티초크 역시 그 아래에서 상당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화가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소재를 함께 배치하면서 각각의 특징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비는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꽃을 보면서 색깔과 향기를 떠올리고, 

아티초크를 보면서 식탁에 오르는 채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그림이 서로 다른 감각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림을 다 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이 작품에는 화려한 꽃과 투명한 유리그릇, 

평범한 채소와 작은 체리가 함께 등장한다.

각각의 사물은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며, 우리 생활에서 사용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어느 하나도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꽃은 화면을 화려하게 만들고, 아티초크는 묵직한 형태로 그 아래를 채운다.

작은 체리는 또 다른 색채와 형태를 더하고, 

유리그릇은 빛을 받아 투명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높이의 받침대는 이 모든 사물이 하나의 그림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한다.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는 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감상하고 나면 꽃뿐 아니라 

아티초크의 잎과 유리병의 작은 빛까지 기억에 남는다.

반 데르 아멘은 평범한 사물들을 특별하게 꾸미기보다 

각각의 사물이 가진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표현했다.

덕분에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꽃 한 송이뿐 아니라 채소 하나, 

유리잔 하나에도 오래 바라볼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이 작품을 천천히 감상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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