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73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세부 감상, 황금 사과는 누구에게 향하고 있을까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파리스 앞에 유노, 미네르바, 비너스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루벤스  작《파리스의 심판》


 이제 이야기는 잠시 잊고 그림만 보자.

화면은 아주 길다. 왼쪽에는 두 남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세 여신이 서 있다. 

그 사이를 풀밭과 하늘이 이어준다.

그런데 루벤스는 다섯 사람을 똑같이 중요하게 그리지 않았다.

처음 그림을 보자마자 눈을 붙드는 것은 오른쪽의 세 여신이다. 

밝은 피부가 어두운 숲을 등지고 나란히 서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왼쪽의 남자들은 갈색과 붉은색, 짙은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다.

밝은 쪽과 어두운 쪽.

여신과 인간.

선택받는 쪽과 선택하는 쪽.

루벤스는 복잡한 설명 없이 화면의 빛만으로 이미 두 세계를 갈라놓았다. 

프라도도 이 작품에서 루벤스가 주변 인물을 줄이고 

세 여성 누드에 시선을 집중시켰다고 설명한다.


턱을 괴고 세 여신을 바라보는 파리스와 황금 사과를 든 메르쿠리우스.
파리스와 황금 사과


먼저 왼쪽,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남자를 본다

왼쪽 아래에 거의 벌거벗은 남자가 앉아 있다.

파리스다.

그런데 우리가 ‘심판’이라는 제목에서 예상하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높은 자리에 앉아 권위 있게 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한쪽 팔을 허벅지에 얹고 손으로 턱을 받쳤다.

몸은 여신들을 향해 있지만 선뜻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세 때문에 파리스는 심판관이라기보다 

어려운 문제 앞에서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보인다.

이 자세를 그냥 지나치면 그림의 재미를 절반쯤 놓치게 된다.

세 여신은 이미 그의 눈앞에 서 있다. 

선택해야 할 대상은 모두 나타났다. 그런데 파리스는 아직 손을 내밀지 않는다.

결정적인 물건도 그의 손에 없다.

황금 사과는 파리스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들고 있다.

바로 메르쿠리우스다.

그는 한 손에 황금 사과를 들고 파리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다른 손에는 뱀이 휘감긴 지팡이, 

즉 메르쿠리우스를 알아보게 해주는 카두케우스가 보인다.

여기서 시선을 사과에 잠시 멈춰보자.

작다.

그림 전체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작다.

그런데 이 조그만 둥근 물체 하나 때문에 화면 속 모든 일이 벌어진다.

세 여신은 이것을 두고 경쟁하고 있고, 파리스는 이것을 누구에게 줄지 결정해야 한다.

루벤스는 가장 중요한 물건을 크게 확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사과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과 몸짓을 연결하게 만들었다.


파리스의 발치에는 목동의 세계가 있다

파리스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면 그가 신들과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것이 보인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개가 있다.

화면 안쪽의 들판에는 양 떼도 보인다. 

파리스가 목동으로 살아가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다. 

프라도의 작품 분류에도 개와 양, 목축과 관련된 도구들이 실제 화면 요소로 확인된다.

그러니 루벤스는 파리스에게 왕자의 화려한 복장을 입히지 않았다.

여신들 앞에 서 있는 것은 궁정의 왕자가 아니라 자연 속의 목동이다.

그런 인간 앞에 갑자기 신들이 내려왔다.

왼쪽과 오른쪽의 대비가 여기서 더 선명해진다.

파리스 쪽에는 개와 양과 땅이 있다.

여신 쪽에는 화려한 몸과 옷, 무기와 새가 있다.

인간의 일상과 신화의 세계가 한 화면에서 맞닿은 것이다.


이제 세 여신에게 시선을 옮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림을 따라가면 분위기가 갑자기 환해진다.

세 여성의 몸 때문이다.

루벤스는 세 여신을 똑같은 자세로 세우지 않았다.

한 사람은 정면에 가까운 몸을 보여주고, 한 사람은 약간 몸을 틀며, 

오른쪽 끝의 여신은 거의 등을 보여준다.

그래서 세 사람을 함께 보면 하나의 몸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생긴다.

정면.

비스듬한 방향.

뒷모습.

몸의 방향이 차례로 바뀌면서 화면이 정지하지 않는다.

특히 오른쪽 여신의 등을 보자.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선이 길게 내려오고, 

몸은 다시 안쪽을 향해 돌아선다. 

얼굴까지 완전히 밖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여신들과 파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연결된다.

세 사람이 단순히 일렬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회전하고 있는 셈이다.

프라도가 이 작품의 여성 인체를 설명하면서 ‘구불구불한 선’과 

과장된 자세를 언급하는 이유를 실제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루벤스의 그림에서는 몸의 윤곽을 따라 눈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감상이 된다.

어깨에서 팔로 내려가고,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고, 다시 다리로 떨어진다.

직선보다 곡선이 훨씬 많다.

그래서 인물들이 서 있는데도 화면은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 여신은 어떻게 구별할까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당연히 궁금해진다.

“그래서 누가 비너스지?”

그림 속 단서를 하나씩 보면 된다.

가운데의 여신이 비너스다.

머리에는 꽃과 장식이 있고, 붉은 천이 몸 옆으로 크게 내려온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아래에 있다.

작은 큐피드가 비너스의 다리 곁에 붙어 있다.

사랑의 여신과 사랑의 신이 함께 있는 것이다.

큐피드는 위를 올려다보며 한 손을 들어 비너스를 가리키는 듯한 몸짓을 한다.

아직 파리스가 사과를 건네기도 전인데, 

작은 큐피드의 움직임 때문에 비너스가 이미 승자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생긴다.

비너스의 왼쪽, 그러니까 화면 중앙 쪽에는 미네르바가 있다.

그녀의 몸 주변에는 희고 푸른 천이 걸쳐져 있다.

그런데 미네르바를 알아보게 해주는 더 확실한 단서는 몸이 아니라 발밑에 있다.

갑옷과 투구, 방패가 놓여 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면서 전쟁과도 관계된 여신이다. 

루벤스는 그녀에게 무장을 한 채 서 있게 하지 않고, 

무기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은 상태로 보여준다.

그래서 세 여성의 몸은 서로 비슷한 조건에서 비교된다.

무장한 여신과 사랑의 여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세 여신이 모두 아름다움이라는 하나의 경쟁 안에 들어온다.

오른쪽 끝에서 등을 보이고 있는 여신은 유노다.

그녀 뒤의 어둠을 자세히 보면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있다.

공작이다.

공작은 전통적으로 유노와 함께 등장하는 새다. 

화면이 어두워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한번 찾고 나면 유노의 위치가 확실해진다. 

프라도 역시 이 작품의 실제 화면 요소 가운데 공작을 명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루벤스가 세 여신의 이름을 써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네르바에게는 무기.

비너스에게는 큐피드.

유노에게는 공작.

관람자는 이 작은 단서들을 찾아가면서 세 여신의 정체를 알아낸다.


무장을 내려놓은 미네르바와 큐피드를 곁에 둔 비너스. 작은 단서들이 두 여신의 정체를 알려준다.
미네르바와 비너스


바닥에 내려놓은 갑옷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


미네르바의 발밑에 내려놓인 투구와 방패, 갑옷. 아름다움의 경쟁 한가운데 놓인 전쟁의 도구들.
미네르바의 갑옷과 무기

이 그림에서 특히 재미있는 곳이 화면 아래쪽이다.

여신들의 얼굴만 보고 있으면 놓치기 쉽다.

미네르바 앞에는 투구와 방패, 갑옷을 비롯한 무장이 한데 놓여 있다. 

금속 표면에는 빛이 닿고, 복잡한 장식이 보인다.

그런데 위치가 절묘하다.

파리스와 세 여신 사이에 있다.

왼쪽에는 선택하는 남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여신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땅 위에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이것을 곧바로 “다가올 트로이 전쟁을 상징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우선 이 무기들은 미네르바를 알아보게 하는 자연스러운 속성이다.

다만 결말을 아는 관람자에게는 다른 생각도 따라온다.

지금은 아름다움을 겨루는 평화로운 순간인데, 화면 한가운데 가까이에 이미 무기가 놓여 있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을 알고 보는 사람에게 이 무기들은 묘하게 불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위를 보면 작은 신들이 숨어 있다

이번에는 시선을 위로 올려보자.

세 여신 머리 위쪽에는 작은 날개 달린 존재가 날고 있다.

아래쪽의 큐피드와 함께 화면에 장난스럽고 가벼운 움직임을 만든다.

루벤스는 아래쪽에 크고 무거운 인간의 몸을 세워놓고 

위쪽에는 작은 날개 달린 존재를 띄워놓았다.

그래서 화면의 무게가 아래에만 쏠리지 않는다.

왼쪽에서는 나뭇가지가 위로 뻗는다.

오른쪽에서도 짙은 나무와 잎이 여신들을 둘러싼다.

그 사이로 하늘이 열린다.

마치 무대의 양쪽에서 커튼을 걷어놓은 것처럼 나무가 장면을 감싸고, 

그 가운데에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이 생긴다.


피부색도 모두 같지 않다

이제 조금 뒤로 물러나서 색만 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 여신의 밝은 살빛이다.

하지만 흰색 물감을 똑같이 칠한 피부가 아니다.

분홍빛과 크림색, 따뜻한 붉은 기운이 섞여 있다. 

팔꿈치나 무릎처럼 몸이 굽어지는 곳에서는 색이 더 진해지고, 

빛을 받는 가슴과 어깨에서는 밝아진다.

그 옆의 붉은 천은 살빛을 더욱 밝게 만든다.

반대로 파리스의 피부는 훨씬 짙고 따뜻하다.

메르쿠리우스 역시 여신들처럼 환하게 빛나지 않는다.

그래서 화면을 멀리서 보면 오른쪽의 세 여신이 하나의 커다란 밝은 덩어리처럼 먼저 떠오른다.

루벤스는 선으로 “여기가 중심이다”라고 표시하지 않았다.

피부의 밝기 자체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 뒤의 어두운 나무도 같은 역할을 한다.

밝은 피부 뒤에 어둠이 붙으면서 몸의 윤곽이 더욱 선명해진다.

특히 유노의 밝은 등과 그 뒤의 짙은 숲을 비교하면 효과가 확실하다.


가까이 가면 몸보다 붓이 보인다

이 그림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인상이 달라진다.

멀리서는 부드러운 피부가 먼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피부를 만든 붓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루벤스는 모든 색을 매끈하게 섞어 붓의 흔적을 지워버리지 않았다. 

프라도는 이 작품에서 붓질들이 서로 완전히 섞이지 않은 채 

각각 눈에 띄는 부분이 있으며, 

이런 방식이 루벤스 후기 회화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루벤스의 여신들이 살아 있는 듯 보이는 이유를 단순히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하면 부족하다.

오히려 가까이에서는 그림이 그림답다.

붓이 지나간 자국이 있고 색이 겹친다.

그런데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 붓자국들이 피부가 되고, 천이 되고, 머리카락이 된다.

프라도에서 실제 작품을 본다면 꼭 가까이 갔다가 

다시 몇 걸음 물러나 볼 만한 이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황금 사과로 돌아온다

이제 그림 전체를 다시 한번 본다.

오른쪽에는 세 여신이 있다.

미네르바의 무기, 비너스 곁의 큐피드, 유노 뒤의 공작도 찾았다.

왼쪽에는 턱을 괴고 생각하는 파리스가 있다.

그 옆에 메르쿠리우스가 서 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아주 작은 황금 사과가 있다.

처음에는 세 여신의 몸이 그림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참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시선이 그 작은 사과로 돌아온다.

그것이 움직이는 순간 모든 관계가 바뀌기 때문이다.

아직 사과는 비너스에게 건너가지 않았다.

파리스는 아직 생각하고 있다.

세 여신도 아직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루벤스가 그린 것은 결과가 아니라 결과가 나오기 바로 직전의 시간이다.

이 그림 앞에서는 서둘러 비너스부터 찾지 않아도 된다.

먼저 밝게 빛나는 세 여신을 보고, 

세 사람의 몸이 서로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는지 본다.

그다음 아래로 내려가 미네르바의 무기를 찾고, 

비너스 곁의 큐피드를 본다. 

오른쪽 어둠 속에서는 유노의 공작을 찾아본다.

그리고 왼쪽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메르쿠리우스의 팔을 따라가면 황금 사과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그 아래의 파리스를 본다.

그는 아직 턱을 괴고 있다.

바로 그 순간 그림이 멈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된다.

아름다움의 승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황금 사과도 아직 건너가지 않았다.


아직 누구에게도 건네지지 않은 황금 사과. 그림 속 선택은 바로 이 순간에 멈춰 있다.
메르쿠리우스의 황금 사과


하지만 관람자인 우리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화면 한가운데 놓인 갑옷도, 아름답게 빛나는 비너스도, 

생각에 잠긴 파리스도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루벤스는 전쟁을 한 장면도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의 선택을 그려놓았다.

《파리스의 심판》을 오래 보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긴장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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