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72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사랑을 골랐을 뿐인데 전쟁이 시작되었다

 세 여신이 한 남자 앞에 섰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한 사람을 고르라는 것이다.

남자는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양을 치던 젊은 목동 파리스다. 

그런데 그가 내린 선택 하나가 훗날 한 도시를 불태우고 

수많은 영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은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을 그린 그림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 1638년경, 캔버스에 유채, 프라도 미술관 소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파리스의 심판》


처음 보면 풍만한 세 여신의 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이 그림을 루벤스 특유의 여성 누드화로만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이야기를 알고 다시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지금 그림 속에는 전쟁도 없고 죽음도 없다. 아직 트로이는 멀쩡하다. 

그러나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 되는 선택이 바로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루벤스는 왜 자신의 생애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 이 오래된 신화를 다시 그렸을까.

그 이야기는 작은 황금 사과 하나에서 시작한다.


결혼식에 날아든 황금 사과

그리스 신화에서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결혼한다.

신들이 모이는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한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황금 사과 하나를 던진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는 사과였다.

문제는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의 여신이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다. 로마식 이름으로는 유노, 미네르바, 비너스다. 

프라도 미술관의 작품 설명도 이 로마식 이름을 사용한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를 신들의 왕 제우스가 결정하면 될 것 같지만, 

제우스는 그 판단을 피한다.

대신 인간에게 선택을 맡긴다.

그 인간이 파리스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지만 당시에는 목동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화는 그렇게 평범한 인간 하나를 세 여신 앞에 세운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세 여신은 파리스의 선택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을 선택하면 무엇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헤라는 권력과 지배를 약속한다.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제시한다.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약속한다.

파리스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사랑이었다.

그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준다.

그런데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아름다운 여인이 하필이면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가면서 

그리스의 왕들과 영웅들이 군대를 일으킨다.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가운데 하나인 

트로이 전쟁이다.

프라도 역시 《파리스의 심판》을 설명하면서 파리스가 비너스를 선택하고, 

그 대가로 헬레네를 얻으며, 그것이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제목에 붙은 ‘심판’이라는 말 때문에 무거운 재판 장면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심사다.

동시에 한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선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루벤스는 왜 이 이야기를 좋아했을까

루벤스에게 《파리스의 심판》은 한 번 그리고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이 주제를 여러 차례 그렸다.

프라도 미술관에도 젊은 루벤스가 1606~1608년에 그린 

《파리스의 심판》이 따로 남아 있다. 

당시 루벤스는 이탈리아에서 고대 조각과 르네상스·매너리즘 미술을 

열심히 흡수하던 시기였다. 

프라도는 그 젊은 시절 작품의 인물들에서 고전 조각의 영향과 

이탈리아 회화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루벤스는 같은 이야기를 다시 붙잡는다.

이번 72편에서 보는 《파리스의 심판》은 1638년경 작품이다.

이때의 루벤스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를 돌아다니던 젊은 화가가 아니다.

유럽 최고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왕과 귀족과 교회가 그의 그림을 원했고, 

안트베르펜의 작업장에는 수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화가이면서 외교 임무까지 수행했던 그는 유럽의 왕실과 정치 세계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 예순을 넘겼다.

루벤스는 1640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러니 1638년경의 《파리스의 심판》은 그의 말년 작품이다.

젊은 시절에 그렸던 신화를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다시 그린 셈이다.

그 사이 그의 그림도 달라졌다.

젊은 루벤스가 고대 조각과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에서 배우며 

힘찬 인체를 만들어갔다면, 말년의 루벤스는 훨씬 자유롭게 붓을 움직였다.

색은 서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윤곽선은 단단하게 닫히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붓자국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프라도는 이 후기작에서 붓질이 완전히 섞여 사라지지 않고 

각각의 흔적을 드러내는 방식을 루벤스 말년 회화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루벤스가 평생 좋아했던 베네치아 회화가 있었다고 본다.

루벤스에게 신화는 옛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는 재료만은 아니었다.

신들의 몸을 통해 인간의 육체를 그릴 수 있었고, 

사랑과 욕망, 질투와 선택 같은 인간의 감정을 펼칠 수도 있었다.

《파리스의 심판》은 그 모든 것을 한 장면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신화를 사랑했던 17세기 왕실

여기서 그림의 장소가 하나 더 연결된다.

스페인이다.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4세였다. 

프라도 미술관에 이 그림이 있는 것은 

훗날 우연히 스페인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다.

처음부터 스페인 왕을 위해 그린 그림이었다.

펠리페 4세 시대의 스페인 왕실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벨라스케스가 바로 이 왕의 궁정화가였다.

그리고 왕실 컬렉션에는 티치아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이 풍부하게 들어와 있었다. 

특히 신화 속 사랑과 욕망을 다룬 티치아노의 그림들은 이후 

스페인 왕실의 미술 취향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루벤스 역시 그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1628년 외교 임무로 마드리드에 머물렀고 

스페인 왕실 컬렉션의 티치아노 작품들을 직접 접했다. 

루벤스에게 티치아노는 젊은 시절부터 중요한 화가였고, 

나이가 들수록 그 영향은 더욱 자연스럽게 자신의 그림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니 《파리스의 심판》에는 흥미로운 문화의 이동이 숨어 있다.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왔다.

그 이야기를 북유럽 플랑드르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다.

그의 그림 속에는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고대 조각과 베네치아 회화의 기억이 들어 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기다린 사람은 스페인의 왕이다.

우리가 지금 프라도에서 보고 있는 한 장의 그림 안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탈리아, 플랑드르, 스페인이 겹쳐 있는 것이다.

17세기 유럽 미술이 국경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왕은 원했지만, 왕의 동생은 걱정했다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펠리페 4세의 동생 페르난도는 당시 남부 네덜란드의 총독이었다. 

루벤스가 활동하던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형인 스페인 국왕의 주문을 현지에서 챙길 수 있는 위치였다.

그는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을 높이 평가했다.

루벤스가 그린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세 여신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체로 그려졌다는 점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페르난도가 이 그림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세 여성의 강한 관능성과 누드에 대해서는 우려했다는 기록이 소개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당시 그림을 바라보던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17세기 스페인은 가톨릭 신앙이 사회와 왕실 문화에 강하게 자리 잡은 나라였다. 

그렇다고 누드가 무조건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왕실 컬렉션에는 이미 신화를 소재로 한 누드 작품들이 있었다.

다만 이런 그림을 어디에서 누가 보는가는 중요한 문제였다.

종교화가 놓이는 공간과 신화 속 나체의 신들이 등장하는 그림이 놓이는 공간은 같지 않았다.

결국 《파리스의 심판》은 스페인으로 보내졌다.

1639년 마드리드에 도착했고 부엔 레티로 궁전을 장식했다. 

이후 스페인 왕실 컬렉션을 거쳐 오늘날 프라도 미술관에 이르렀다.

우리가 프라도에서 이 그림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 그림은 처음부터 스페인 왕실을 향해 여행하도록 태어난 작품이었다.


루벤스에게 아름다운 몸이란 무엇이었을까

루벤스의 여성을 두고 흔히 ‘풍만하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루벤스가 왜 그렇게 몸을 그렸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날씬한 몸의 기준을 가지고 

루벤스의 여신들을 평가할 필요도 없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살아 있는 육체였다.

피부 아래에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몸, 움직이면 

살과 근육이 함께 따라 움직일 것 같은 몸이다. 

고대 조각을 연구했지만 돌처럼 차가운 인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루벤스에게 신화의 여신은 현실과 완전히 떨어져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신이지만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고 질투하며 경쟁한다.

그런 신화를 루벤스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회화의 언어로 바꾸었다.

프라도는 이 작품에서 세 여성 누드가 특별히 중심에 놓인 이유도 설명한다. 

이 그림과 관련된 앞선 디자인에는 주변 인물이 더 많았지만, 

최종 회화에서는 양옆의 요소를 줄이면서 세 여신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루벤스가 선택한 것은 복잡한 신화의 모든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선택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을 선택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여기서 《파리스의 심판》이 묘하게 현대적인 질문을 던진다.

파리스 앞에는 권력도 있고 승리도 있고 사랑도 있었다.

그가 사랑을 골랐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낭만적인 선택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가 전쟁이다.

그래서 이 신화에서 사랑은 단순히 아름다운 감정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욕망과 사랑은 가까이 붙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파괴가 될 수도 있다.

프라도 역시 루벤스가 이 주제를 반복해서 그린 이유를 

여성미를 표현하기 좋은 소재였다는 점과 함께 사랑과 열정이 불러오는 

결과를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찾는다.

그렇다고 루벤스가 우리에게 “욕망을 버려라”라고 설교하는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그는 그 욕망의 순간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파리스가 왜 흔들렸는지 관람자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몸과 부드러운 피부, 풍성한 색채가 먼저 눈을 붙잡는다. 

그 다음에야 우리는 이 장면 이후 벌어질 일을 떠올린다.

아직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도 헥토르도 싸우지 않았다.

트로이 성벽도 무너지지 않았다.

파리스의 손에 있는 선택 하나가 아직 그 모든 사건보다 앞에 있다.

그래서 프라도에서 《파리스의 심판》을 처음 만난다면 

세 여신 가운데 누가 비너스인지부터 찾아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먼저 이 상황 하나만 알고 그림 앞에 서면 된다.


한 인간에게 세 가지 욕망이 주어졌다.

그는 사랑을 골랐다.

그리고 그 선택 때문에 전쟁이 시작된다.

그 사실을 알고 다시 그림을 바라보면 

루벤스가 펼쳐놓은 아름다운 신들의 세계가 조금 불안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부터 《파리스의 심판》은 ‘풍만한 세 여신이 등장하는 루벤스의 그림’에서 벗어난다.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그림이면서, 욕망을 선택하는 그림이 된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래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 바로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림이 된다.

댓글 쓰기

© 나의 세계일주.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Jago Des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