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는 이 그림이 어떤 이야기에서 태어났는지 살펴봤다.
이번에는 신화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는다.
티치아노가 어떤 화가인지도 되풀이하지 않는다.
그림 앞에 직접 서 있다고 생각하고 화면만 보자.
《비너스와 아도니스》는 첫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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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치아노 작《비너스와 아도니스》 |
거의 모든 긴장이 두 사람에게 모여 있다.
한 사람은 붙잡는다.
한 사람은 떠난다.
그런데 티치아노는 이 단순한 행동 하나를 얼굴과 손, 다리와 천, 사냥개와 큐피드,
그리고 멀리 열린 하늘까지 연결한다.
그 연결을 하나씩 따라가면 된다.
먼저 두 사람의 몸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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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니스를 붙잡는 비너스 |
그림 전체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너스와 아도니스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인데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도니스의 몸은 이미 떠나는 쪽으로 향한다.
비너스의 몸은 그 반대다.
그녀는 앉아 있는 자리에서 몸을 비틀어 아도니스에게 매달린다.
상체를 돌리고 팔을 뻗어 그의 몸을 붙잡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단순히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힘은 밖으로 향하고, 다른 사람의 힘은 그를 다시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그림 한가운데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생긴다.
아도니스가 조금만 더 앞으로 나가면 두 사람은 떨어질 것 같다.
비너스가 조금만 더 강하게 끌어당기면 아도니스가 다시 돌아설 것 같다.
티치아노는 바로 그 사이를 붙잡았다.
비너스의 얼굴보다 먼저 등이 보인다
이제 비너스를 보자.
조금 이상하다.
사랑의 여신을 그렸는데 얼굴을 정면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관람객에게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은
비너스의 등과 어깨, 허리와 엉덩이로 이어지는 몸이다.
이 자세 때문에 우리는 비너스의 얼굴을 편하게 바라볼 수 없다.
그녀가 누구인지 확인하기보다 먼저 그녀의 몸이 얼마나 급하게 돌아가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상체와 하체가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몸을 돌린 순간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누드는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몸 자체가 행동을 한다.
등은 돌아가고, 어깨는 올라가며, 팔은 아도니스를 향해 뻗는다.
앞 편에서 《다나에》와 이 작품이 한 쌍처럼 생각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티치아노 자신도 펠리페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나에》에서는
여성의 앞쪽을 보여주었으므로 이번 ‘포에지아’에서는 반대쪽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실제 그림에서는 그 생각이 단순한 누드의 앞뒤 비교보다 훨씬 극적으로 사용된다.
비너스가 등을 보이는 자세 자체가 떠나는 아도니스를 붙잡기 위한 동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비너스의 두 팔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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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니스를 붙잡은 비너스의 두 팔 |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 팔을 따라가보자.
비너스의 팔은 아도니스를 향한다.
이 그림에서 손은 말보다 직접적이다.
‘가지 마’라는 문장이 화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손과 팔이 그 말을 대신한다.
그녀의 몸은 앉아 있는 장소에 남아 있는데 팔은 이미 떠나는 남자를 따라간다.
이것이 비너스를 더 절박하게 만든다.
얼굴 표정만 확대해서 보면 이 장면의 감정을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비너스의 감정은 얼굴보다 몸 전체의 방향에서 더 강하게 나온다.
특히 아도니스가 이미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팔에는
단순한 포옹과 다른 긴장이 생긴다.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붙잡고 있다.
이번에는 아도니스의 얼굴을 보자
아도니스는 비너스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는다.
몸은 떠나려 하지만 얼굴은 그녀에게 돌아가 있다.
바로 이 어긋남이 중요하다.
만약 얼굴까지 사냥개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아도니스는 차갑게 비너스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몸 전체가 비너스를 향하고 있었다면 이별의 긴장은 사라졌을 것이다.
티치아노는 둘 사이를 선택한다.
몸은 떠나고 얼굴은 남는다.
그래서 아도니스에게도 두 방향이 생긴다.
비너스를 바라보는 시선과 사냥으로 향하는 몸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거절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 사이에는 아주 짧은 거리가 있다
이번에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보자.
거의 붙어 있다.
비너스의 몸과 아도니스의 몸 사이에는 넓은 배경이 들어갈 틈이 없다.
얼굴도 가깝다.
이 가까움이 오히려 이별을 더 강하게 만든다.
이미 멀어진 사람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면 우리는 결과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두 사람의 몸은 맞닿아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도니스의 몸은 그 접촉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즉 티치아노가 그린 것은 ‘헤어진 두 사람’이 아니다.
헤어짐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차이가 그림 전체의 긴장을 만든다.
이제 아도니스의 몸을 아래로 따라가자
아도니스의 상체에서 다리까지 천천히 내려가보자.
비너스와 비교하면 자세가 훨씬 직선적이고 단단하다.
한쪽 다리는 이미 앞으로 향한다.
발은 움직임을 준비한다.
상체에도 그 방향성이 이어진다.
비너스의 몸이 둥글게 돌아가며 아도니스를 감싸려 한다면
아도니스의 몸은 그 곡선에서 빠져나가려는 방향을 만든다.
그래서 두 사람의 몸은 형태에서도 충돌한다.
한쪽은 붙잡는다.
다른 한쪽은 나아간다.
티치아노는 감정을 표정에만 맡기지 않고 몸의 방향으로 바꾸어놓았다.
손에 들린 것은 사랑의 물건이 아니다
이제 아도니스의 손과 팔 주변을 보자.
그에게는 사냥을 위한 장비가 있다.
깃털이 달린 사냥용 창을 들고 있고,
다른 쪽에는 사냥개들을 통제하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
프라도 소장본은 아도니스와 함께 세 마리의 사냥개가 등장하는 유형이다.
이 물건들이 중요하다.
아도니스는 막연히 어딘가로 산책을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사냥을 위한 준비를 마친 사람이다.
비너스가 붙잡고 있는 순간에도 그의 손에는 자신이 가려는 세계의 물건들이 들려 있다.
그래서 화면 안에서 사랑과 사냥이 맞부딪친다.
비너스의 손은 아도니스를 붙잡는다.
아도니스의 손은 사냥을 준비한다.
손만 비교해도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사냥개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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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니스와 세 마리 사냥개 |
이제 시선을 화면 오른쪽 아래로 옮겨보자.
아도니스 옆에는 사냥개들이 있다.
개들은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들어간 동물이 아니다.
사냥개가 있다는 순간 아도니스가 어디로 가려는지가 분명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동물들이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임을 만든다는 점이다.
비너스는 뒤에서 붙잡는다.
아도니스는 앞으로 나아간다.
사냥개들은 그 앞의 세계로 향한다.
그래서 화면의 힘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쏠린다.
마치 아도니스 혼자 비너스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이 아니라
사냥 전체가 그를 끌고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개들의 다리와 아도니스의 다리를 함께 보면 좋다.
그림이 정지되어 있는데도 출발 직전의 움직임이 생긴다.
반대편에서는 큐피드가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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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아래 잠든 큐피드 |
이제 두 연인에게서 눈을 떼고 화면 왼쪽 뒤편으로 가보자.
나무 아래에 작은 큐피드가 있다.
그런데 사랑의 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다.
잠들어 있다.
그 근처에는 활과 화살통도 보인다.
프라도의 오래된 작품 설명 역시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장면
뒤쪽에 잠든 사랑의 신을 두고, 활과 화살통을 나무에 걸어놓은 구성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장면은 꽤 묘하다.
화면 앞에서는 사랑의 여신이 필사적으로 연인을 붙잡고 있는데
정작 사랑을 일으키는 큐피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활도 사용되지 않는다.
화살도 날아가지 않는다.
사랑의 힘이 잠시 멈춘 것처럼 볼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을 하나의 정답으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실제 화면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앞쪽의 격렬한 움직임과 뒤쪽의 잠든 큐피드가 강하게 대비된다는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사랑이 다급하다.
다른 쪽에서는 사랑의 신이 너무나 조용하다.
나무도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큐피드 주변에서 시선을 위로 올리면 짙은 나무가 화면의 상당 부분을 덮는다.
이 어두운 녹색과 갈색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비너스의 밝은 피부가 그 앞에서 훨씬 강하게 떠오른다.
아도니스의 몸과 옷도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윤곽이 살아난다.
그런데 나무가 화면 전체를 막고 있지는 않다.
오른쪽으로 가면 공간이 열린다.
이 차이를 눈여겨보자.
비너스가 있는 쪽에는 나무와 그늘이 있다.
아도니스가 향하는 쪽에는 더 열린 공간이 있다.
그 결과 아도니스의 이동 방향이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림의 배경까지 그의 출발을 돕는 셈이다.
두 사람 아래의 천을 놓치지 말자
다시 비너스 아래로 내려가보자.
그녀가 앉은 곳에는 붉고 따뜻한 색조의 천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 천은 누드와 땅 사이를 이어준다.
맨몸이 그대로 거친 땅에 닿는 느낌을 막아주면서
비너스 주변에 부드럽고 감각적인 영역을 만든다.
색도 중요하다.
비너스의 밝은 피부와 따뜻한 천이 만나면서 이 부분은
화면에서 매우 강한 시각적 덩어리가 된다.
반면 아도니스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그래서 천은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다가도 두 사람의 상황과 묘하게 연결된다.
비너스는 아직 사랑의 자리에 남아 있다.
아도니스는 그 자리에서 떠난다.
피부도 서로 같지 않다
이제 두 사람의 피부색을 비교해보자.
비너스의 피부는 밝고 부드럽게 드러난다.
아도니스의 몸은 그보다 더 단단하고 활동적인 인상을 준다.
이 차이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피부를 다르게 칠했다는 문제만은 아니다.
비너스의 몸에는 빛이 넓게 머문다.
등과 어깨, 팔과 다리로 이어지는 밝은 면이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든다.
그래서 그녀는 붙잡고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오래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 된다.
반면 아도니스는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은 시선을 머물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시선을 이동시킨다.
티치아노는 이 둘을 한 화면 안에서 충돌시킨다.
이제 위쪽 하늘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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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사이로 밝아지는 하늘 |
두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화면 위쪽의 하늘이다.
멀리 하늘에는 빛이 번지고 구름 사이로 작은 형상이 나타난다.
이 부분의 정체에 대해서는 해석이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다른 ‘프라도 유형’의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설명하는 미술사 자료에서는
비너스의 마차와 관련된 장면으로 보거나, 새벽을 나타내는 태양신과 연결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볼 때는 이름부터 확정하려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먼저 실제 효과를 보자.
아래쪽에는 짙은 나무와 무거운 인물들이 있다.
위쪽에는 구름 사이로 빛이 열린다.
이 밝음 때문에 그림 속 시간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생긴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가운데 하루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아도니스에게는 이제 사냥을 떠날 시간이 온 것이다.
색을 한 번에 보지 말고 덩어리로 보자
이제 조금 뒤로 물러나 색만 보자.
가장 먼저 밝은 비너스의 피부가 하나의 큰 덩어리를 만든다.
그 주변에는 따뜻한 붉은색과 갈색이 있다.
그 위로 짙은 녹색의 나무가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가면 아도니스와 개들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더 멀리 가면 색은 옅어지며 공간이 열린다.
티치아노는 모든 곳을 똑같은 밝기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밝은 피부에서 시작해 두 사람의 얼굴로 올라갔다가 아도니스의 팔을 따라간다.
다시 개들에게 내려갔다가 배경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어두운 나무 아래 잠든 큐피드를 뒤늦게 발견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라 눈이 움직이는 동안
이야기가 조금씩 생겨나는 그림이다.
다시 두 사람의 얼굴로 돌아오자
화면을 한 바퀴 돌았다면 마지막에는 다시 비너스와 아도니스에게 돌아오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처음과 다르게 보인다.
처음에는 여자가 남자를 붙잡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아도니스의 손에 사냥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개들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보았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뒤에서 잠들어 있다.
비너스는 맨몸으로 앉아 있고 아도니스는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모든 요소가 다시 두 사람 사이로 모인다.
그리고 여기서 그림의 가장 잔인한 부분이 드러난다.
둘은 아직 서로를 보고 있다.
완전히 헤어진 것도 아니다.
아도니스는 아직 화면 밖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비너스의 손도 아직 그의 몸에 닿아 있다.
조금만 시간이 멈추면 모든 것이 그대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티치아노가 그린 자세는 시간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도니스의 몸은 이미 다음 동작을 시작했다.
정지된 그림인데 시간이 흐른다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오래 보고 있으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림은 움직일 수 없는데 자꾸 다음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비너스의 손이 미끄러질 것 같다.
아도니스가 몸을 돌릴 것 같다.
개들이 먼저 앞으로 달려갈 것 같다.
잠들어 있는 큐피드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를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 사이에 공간이 생길 것 같다.
티치아노가 선택한 것은 비극 그 자체가 아니다.
아직 피도 없고 죽음도 없다.
그 대신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순간을 그렸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얼굴만 확대해서 보면 부족하다.
비너스의 등을 보고, 팔을 따라가고, 아도니스의 몸이 향하는 방향을 본다.
그다음 사냥 도구와 개를 보고 반대편의 잠든 큐피드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다시 두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러면 그림 전체가 하나의 문장처럼 읽힌다.
비너스의 몸은 말한다.
남아달라고.
아도니스의 몸은 이미 대답하고 있다.
떠나겠다고.
그리고 그림을 보는 우리는 두 사람보다 한 가지를 더 알고 있다.
이번 이별 뒤에는 다시 만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가장 슬픈 것은 아도니스의 죽음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아직 살아 있다.
아직 손이 닿는다.
아직 서로를 바라본다.
그런데도 그림 속 모든 방향은 이미 이별을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