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68편 티치아노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 르네상스는 왜 고대의 신들을 다시 불러냈을까

 프라도 미술관에서 티치아노의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를 

만나기 전에 잠시 그림에서 눈을 떼어보자.

이번에는 그림 속에 누가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의 몫이다.

대신 시간을 500년 전으로 돌려보자.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는 왜 기독교인이었던 귀족이 

자신의 궁전에 고대의 술의 신 바쿠스를 그려 넣었을까. 

그리고 왜 그 일을 티치아노에게 맡겼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고 그림 앞에 서면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티치아노,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 1523~1526년경, 프라도 미술관 소장. 고대 신화와 르네상스 궁정 문화가 만난 티치아노의 대표적인 신화화다.
티치아노 작《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


신을 그렸지만 종교화는 아니었다


티치아노가 이 작품을 완성해가던 

1520년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흔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부활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실제로 무엇이 부활했다는 것일까.

사람들이 갑자기 기독교를 버리고 

그리스·로마의 신들을 다시 믿기 시작했다는 뜻은 아니다.

르네상스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잊혔거나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던 고대의 문학과 역사, 철학과 신화를 

적극적으로 읽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대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미술의 세계도 넓어졌다.

성모와 그리스도, 성인들의 이야기가 여전히 중요한 주제였지만, 

이제 비너스와 아폴론, 바쿠스 같은 고대의 신들도 

궁전과 개인 공간의 그림 속으로 활발하게 돌아왔다.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는 바로 이런 변화 속에서 태어난 그림이다.


르네상스가 발견한 또 하나의 인간

여기서 르네상스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의 변화는 단순히 그림을 더 사실적으로 그리게 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즐기며, 무엇을 욕망하는지도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고대 신화는 여기에 아주 좋은 세계를 제공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비너스가 있었고,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영웅과 운명, 질투와 욕망, 술과 음악, 자연과 인간의 즐거움도 

신화라는 틀 안에서는 얼마든지 펼쳐낼 수 있었다.

특히 바쿠스는 특별했다.

그는 로마 신화의 술의 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에 해당한다. 

포도주만을 담당하는 신으로 생각하면 너무 좁다. 

바쿠스의 세계에는 축제와 음악, 춤, 취기, 욕망, 자연의 풍요와 일상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함께 따라다닌다.

이런 신의 이야기가 르네상스 궁정에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문화를 알고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교양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하나의 미술이 없었다


우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한꺼번에 부르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 밀라노, 교황이 지배하던 로마 주변 지역, 페라라와 만토바 같은 

여러 도시와 궁정이 서로 다른 정치적·문화적 환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르네상스 미술도 하나의 모습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피렌체와 로마에서는 인체의 구조, 정확한 형태, 원근법, 조화로운 구성이 

강력한 전통을 이루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반면 베네치아에서는 조금 다른 회화가 발전했다.

티치아노를 이해하려면 바로 이 베네치아로 가야 한다.


베네치아에서는 색이 그림을 만들었다


베네치아 르네상스 회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색채’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을 예쁘게 썼다” 정도로 이해하면 부족하다.

피렌체와 로마의 회화 전통을 설명할 때 흔히 강조되는 것이 ‘디세뇨(disegno)’다. 

선을 통해 형태를 잡고, 인체와 공간을 설계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보는 개념이다.

이에 비해 베네치아 회화를 이야기할 때는 ‘콜로리토(colorito)’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색을 단순히 완성된 형태 안에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색과 빛의 관계를 통해 

형태 자체가 살아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피부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색 때문이다.

천이 부드럽거나 무겁게 느껴지는 것도 색과 빛 때문이다.

멀리 있는 풍경과 가까운 인물 사이에 

공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 역시 색조의 변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

티치아노는 바로 이 베네치아 회화의 가능성을 가장 멀리 밀고 나간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조반니 벨리니와 조르조네를 지나 티치아노로


티치아노의 그림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 앞에는 조반니 벨리니가 있었다.

벨리니는 베네치아 회화에서 빛과 색, 풍경과 인간을 결합하는 새로운 전통을 발전시킨 

중요한 화가였다. 젊은 티치아노 역시 그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조르조네다.

조르조네는 티치아노보다 조금 앞선 세대의 화가였지만 

두 사람의 초기 작품은 지금도 미술사가들이 작가를 구분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보여준다. 

젊은 티치아노는 조르조네가 보여준 시적인 풍경과 부드러운 색채, 

인물과 자연이 하나의 분위기로 이어지는 회화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티치아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색채를 훨씬 더 강렬하게 사용했고 인물에게 더 큰 생명력과 움직임을 주었다. 

그림 전체를 하나의 감각적인 경험으로 만드는 능력도 점점 커졌다.

1516년 조반니 벨리니가 세상을 떠난 뒤 

티치아노는 사실상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의 위치로 올라섰다. 

프라도 미술관도 이 시기를 티치아노가 베네치아를 넘어 

다른 이탈리아 궁정으로 명성을 넓혀가던 중요한 시기로 본다.

바로 그 무렵 페라라에서 중요한 주문이 들어왔다.


베네치아 화가를 부른 페라라의 공작


주문자는 페라라의 공작 알폰소 1세 데스테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궁정들은 정치력만으로 경쟁하지 않았다.

누가 뛰어난 시인을 곁에 두고 있는지, 누가 훌륭한 음악가를 후원하는지, 

누구의 궁전에 가장 뛰어난 그림이 걸려 있는지도 군주의 명성과 연결되었다.

예술은 취미이면서 동시에 권력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알폰소 1세는 자신의 궁전 안에 특별한 공간을 꾸미려 했다.

오늘날 ‘카메리노 달라바스트로’, 즉 알라바스터 방이라고 부르는 공간이다.

이곳은 공개된 교회가 아니었다. 공작의 개인적인 공간에 가까웠다.

그러니 여기에 걸릴 그림 역시 제단화와는 목적이 달랐다.

알폰소는 당대 이탈리아의 뛰어난 화가들을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이려 했다. 

조반니 벨리니뿐 아니라 라파엘로, 프라 바르톨로메오, 

도소 도시 등이 이 계획과 관계되었고, 

결국 티치아노가 이 공간을 위한 신화화 제작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프라도는 이 장식 계획을 16세기 전반의 매우 중요한 신화화 연작으로 평가한다.

여기서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가 태어났다.


공작은 왜 자신의 방을 고대 세계로 만들었을까


알폰소가 원했던 것은 고대 조각 몇 점을 가져다 놓은 방 정도가 아니었다.

프라도 미술관의 설명을 따라가면 훨씬 흥미로운 생각에 도달한다.

그는 자신의 궁전 안에서 마치 ‘고대인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고대 문학에 등장하는 신화 세계를 당대 최고의 회화를 통해 되살리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르네상스 궁정 문화의 한 단면이다.

고대는 공부해야 할 과거인 동시에 다시 체험해보고 싶은 이상적인 세계였다.

그래서 알라바스터 방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그림 몇 점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었다.

비너스와 사랑, 바쿠스와 술, 음악과 축제, 인간의 욕망과 즐거움이 펼쳐지는 

고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에 가까웠을 것이다.

알폰소에게 이런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이 고대 문화를 이해하는 세련된 군주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티치아노에게도 중요한 기회였다


이 주문은 티치아노에게도 의미가 컸다.

베네치아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화가가 

이제 다른 도시의 유력한 궁정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은 것이다.

프라도를 비롯한 관련 자료를 보면 티치아노는 

알폰소를 위해 《비너스 숭배》,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그리고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로 이어지는 중요한 신화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훗날 아니발레 카라치, 푸생, 루벤스 같은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에서 티치아노에게 주어진 과제는 흥미로웠다.

이미 존재하는 고대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문헌에 남아 있는 이야기를 읽고, 

사라진 고대 회화의 세계를 르네상스 화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도 

고대 작가 필로스트라토스의 글이었다.

그러니 이 그림에는 서로 다른 시대가 겹쳐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가 있고, 그것을 글로 남긴 고대 문학이 있으며, 

그것을 다시 발견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티치아노의 베네치아 회화가 있다.


티치아노가 고대를 그리면 고대가 현재가 된다


티치아노는 고대를 차갑게 복원하려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낸 신화의 세계는 살아 있는 인간의 세계와 가까웠다.

이것이 티치아노 신화화를 볼 때 기억해둘 만한 지점이다.

신화는 먼 옛날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핑계가 아니다.

사랑과 욕망, 기쁨과 두려움, 육체와 자연 같은 

인간의 감각을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무대가 된다.

그리고 이런 세계는 베네치아 회화의 색채와 아주 잘 맞았다.

선을 따라 사물을 하나씩 읽는 그림이라기보다 빛과 색, 피부와 천, 하늘과 풍경이 

서로 영향을 주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림이다.

그래서 티치아노에게 색은 장식이 아니다.

색이 온도를 만들고, 공기를 만들고, 피부를 만들고, 감정을 만든다.

그림을 ‘읽는’ 것보다 먼저 ‘느끼게’ 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이제 제목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라는 제목만 보면 

처음에는 술의 신과 축제를 그린 신화화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림이 태어난 시대를 알고 나면 그 뒤에 훨씬 큰 세계가 보인다.

고대 문화를 되살리고 싶었던 르네상스가 있다.

그 고대를 자신의 교양과 권력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했던 페라라의 궁정이 있다.

그리고 선보다 색과 빛을 통해 세계를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던 

베네치아 회화가 있다.

그 중심에 티치아노가 있었다.

그러니 이 작품은 단순히 ‘바쿠스의 축제를 그린 그림’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고대의 신화를 빌려 인간의 감각과 즐거움을 어디까지 회화로 바꿀 수 있는가.

티치아노는 그 가능성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사실만 기억하고 실제 작품 앞에 서도 충분하다.

그때부터 우리는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을 맞히기 위해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왜 이런 세계를 꿈꾸었고, 

티치아노가 그 꿈을 어떤 회화로 바꾸었는가를 보게 된다.

그것이 《안드로스인의 바쿠스 축제》를 만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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