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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아힘 파티니르 작《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 |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만나면 조금 의외다.
분명 제목에는 카론이라는 인물이 들어가는데,
정작 사람보다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넓고 푸른 물이 화면 깊숙한 곳까지 이어진다.
양쪽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그 사이에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다.
요아힘 파티니르의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카론부터 찾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파티니르에게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무대였다.
풍경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만든 화가
요아힘 파티니르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출생 연도도 정확하지 않다.
오늘날 벨기에에 해당하는 디낭 또는 그 주변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으며,
1515년에는 안트베르펜의 성 루가 길드에 이름을 올렸다.
1524년 안트베르펜에서 세상을 떠났다.
활동 기간만 놓고 보면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 서양미술사에서 파티니르의 이름은 아주 특별한 위치에 놓인다.
바로 풍경 때문이다.
물론 파티니르 이전에도 그림에는 산이 있었고
강이 있었으며 나무와 마을도 있었다.
성경 이야기를 그린 그림 뒤에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졌다.
하지만 대개 풍경은 이야기의 배경이었다.
성모 마리아가 중요하면 성모가 크게 보이고,
성인이 주인공이면 성인의 행동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산과 강은 그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파티니르는 그 관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사람은 작아지고 세계는 커졌다.
인물을 찾으려면 넓은 풍경 속을 한참 돌아다녀야 할 정도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파티니르의 작품을
유럽 풍경화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설명한다.
그의 그림에서는 인물과 배경의 전통적인 비중이 뒤집히면서
관람자의 눈이 넓은 풍경 전체를 여행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풍경화가 너무 익숙해서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16세기 초에는 상당히 새로운 일이었다.
뒤러가 남긴 재미있는 기록
파티니르가 당시에도 풍경으로 이름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명한 기록이 있다.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가 남긴 네덜란드 여행 기록이다.
뒤러는 1520년부터 1521년까지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여러 화가와 상인, 지식인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파티니르와도 교류했다.
뒤러는 자신의 기록에서
파티니르를 풍경을 잘 그리는 화가라는 뜻의 표현으로 언급했다.
이 기록은 파티니르가 생전에 이미 풍경화가로
뚜렷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두 사람은 작품도 주고받았다.
파티니르가 단순히 후대에 와서 풍경화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풍경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화가로 인식되고 있었던 셈이다.
왜 안트베르펜이었을까
파티니르가 활동했던 안트베르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6세기 초 안트베르펜은 유럽에서 빠르게 성장하던 국제적인 상업 도시였다.
각지의 상인과 물건이 모였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사고파는 시장도 커졌다.
이 변화는 화가들에게도 중요했다.
교회나 왕실의 주문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구매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제와 크기, 형식도 새로운 구매자의 취향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파티니르의 넓은 풍경은 이런 환경과 잘 맞았다.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림 자체가 아름다웠다.
성경의 한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세계를 천천히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이
어디에 걸기 위해 주문된 작품인지,
누가 주문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제단화보다는 개인적으로 감상하는 그림,
이른바 캐비닛 페인팅에 가까웠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 감상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풍경 속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까지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카론은 누구인가
이제 제목으로 돌아가자.
카론은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저승 세계와 관계된 뱃사공이다.
고대의 저승 이야기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산 자들의 세계를 떠나 저승으로 건너가야 한다.
그 경계를 이루는 강과 물길을 건네주는 존재가 카론이다.
죽은 자가 카론에게 뱃삯을 지불해야 한다는 전승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장례 문화와 관련해
죽은 사람에게 동전을 마련해주는 관습이 카론의 뱃삯과 연결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파티니르가 그리스 신화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파티니르는 고대 신화의 세계와 기독교의 사후 세계를 한 화면에 섞어놓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그림이 특별해진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가 한 그림에 들어왔다
16세기 초 유럽은 르네상스 문화가 북유럽으로 넓게 퍼져가던 시기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과 신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렇다고 중세부터 이어진 기독교 세계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문화가 동시에 존재했다.
파티니르는 바로 그 두 세계를 한 그림에 집어넣었다.
가운데에는 고대 신화에서 온 카론이 있다.
그런데 카론이 지나가는 세계의 양쪽에는 단순히
그리스 신화의 저승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이미지가 함께 등장한다.
천국과 지옥, 구원과 멸망이라는 기독교적 생각이
카론이라는 고대의 인물과 만난다.
이것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 그림인지 기독교 그림인지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고대 신화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욕망과 운명을 생각하게 만드는
오래된 지혜의 세계로 다시 읽히고 있었다.
파티니르는 그 오래된 이야기를 기독교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에 연결했다.
아름다운 길이 반드시 좋은 길은 아니다
이 작품의 바탕에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 있다.
인간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삶을 길에 비유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마태복음에는 생명으로 가는 문은 좁고 길은 험하지만,
멸망으로 향하는 길은 넓고 들어가기 쉽다는 내용이 나온다.
파티니르의 그림에서도 이 생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원으로 가는 길과 멸망으로 향하는 길이 똑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나는 어렵고 다른 하나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여기서 파티니르는 관람자에게 조금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정말 옳은 길을 선택할까.
아니면 눈앞에서 더 편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쪽을 선택할까.
어느 쪽이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는 아직 자세히 보지 말자.
그건 다음 세부 감상에서 직접 그림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다.
지금은 이 그림의 풍경 자체가 인간의 선택을 보여주는
거대한 무대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림
이런 의미에서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은
‘메멘토 모리’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메멘토 모리.
말이 조금 어렵지만 뜻은 간단하다.
죽음을 기억하라.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겁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결국 질문은 죽음보다 삶에 있었다.
언젠가 죽는다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가.
중세 후기에는 죽음을 앞둔 인간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다루는 ‘아르스 모리엔디’,
즉 ‘잘 죽는 법’에 관한 전통도 널리 퍼져 있었다.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 역시 이런 오래된
죽음과 구원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파티니르는
그것을 해골이나 시체가 가득한 무서운 장면으로 만들지 않았다.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넓은 풍경 속에 넣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처음에는 아름답다.
그리고 의미를 알고 다시 보면 조금 무서워진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시대
이 그림이 제작된 시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작품을 1520~1524년경으로 본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면벌부 문제를 제기한 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의 거대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파티니르가 세상을 떠난 1524년 무렵에는
아직 이후의 종교전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이 그림을 특정한 종교개혁 사건을 직접 설명하는 작품으로 보면 곤란하다.
하지만 구원은 어떻게 얻는가, 인간은 죽은 뒤 어디로 가는가,
올바른 신앙과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당시 유럽 사회에서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었다.
프라도 역시 이 작품을 파티니르가 살았던 격동기의 불안과 연결하면서,
죽음에 대비하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라는 성격의 그림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이 그림 속 작은 배는 한 사람의 죽음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배에 탄 영혼은 그림을 보는 사람 자신일 수도 있다.
보스의 세계와 파티니르의 세계
이 그림을 보면서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럽다.
파티니르는 보스보다 뒤의 세대다.
보스는 《쾌락의 정원》을 비롯한 작품에서 천국과 지옥, 인간의 죄와 유혹을
기괴하고 놀라운 이미지로 펼쳐놓았다.
파티니르 역시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을 만들면서
보스의 천국과 지옥 이미지에서 영향을 받았다.
프라도가 실시한 적외선과 X선 조사에서는 제작 과정에서
파티니르가 구도를 바꾼 흔적도 확인되었다.
초기 구상에서는 보스의 영향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드러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성 단계에서 일부 요소를 줄이고 수정하면서
결국 파티니르 자신의 세계가 더 강해졌다.
그 결과 이 그림에서는 괴물보다 풍경이 더 큰 힘을 갖는다.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는 수많은 인물보다 산과 물, 숲과 바위가 먼저 보인다.
보스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면서도 결국 자기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펠리페 2세의 컬렉션으로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이 어떻게 스페인에 들어왔는지는
완전히 밝혀져 있지 않다.
프라도의 소장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스페인 왕실 컬렉션에 속했으며,
아마도 펠리페 2세의 컬렉션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본다.
펠리페 2세는 북유럽 회화에 큰 관심을 가진 왕이었다.
특히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파티니르의 작품 역시 왕실 컬렉션에 여러 점 들어왔다.
1636년 기록에는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이 마드리드의 옛 왕궁인
알카사르에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그리고 1734년 크리스마스이브, 마드리드 왕궁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수많은 작품이 위험에 처했다.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은 다행히 그 화재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부엔 레티로 궁전을 거쳐 오늘날 프라도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작은 목판 하나가
16세기 플랑드르에서 태어나 스페인 왕실에 들어오고,
왕궁 화재까지 견뎌낸 뒤 프라도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작은 배 한 척보다 훨씬 큰 이야기
이제 다시 그림 전체를 바라보자.
파티니르는 인간을 크게 그리지 않았다.
인간보다 세계가 훨씬 크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숲이 있으며, 그 넓은 공간 사이에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다.
그 배에 탄 존재에게는 이제 선택해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고대 신화의 카론을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파티니르는 신화와 기독교, 중세의 죽음관과 르네상스의 고전 문화,
그리고 새롭게 성장하던 풍경화를 하나의 화면 안에 넣었다.
그러면서 풍경을 배경에서 주인공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그래서 《스틱스강을 건너는 카론》 앞에서는 카론만 찾으면 안 된다.
오히려 카론을 둘러싼 세계를 봐야 한다.
인간은 작고 세계는 넓다.
길은 둘로 갈린다.
그리고 선택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그 사실을 알고 그림 앞에 다시 서면,
처음 보았던 아름다운 푸른 풍경이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파티니르가 그린 것은 저승으로 가는 강 하나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선택의 풍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