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크기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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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녀 후아나 작품 전체 |
가로가 5미터에 이르고 세로도 3미터가 넘는다. 책이나 휴대전화 화면으로 볼 때와 프라도 미술관에서 실제 작품 앞에 섰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른 이유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화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려한 왕관도, 거대한 궁전도 아니다.
검은 옷을 입고 홀로 서 있는 한 여자다.
후아나다.
그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도 그녀와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은 많은데 여왕은 혼자다.
이 그림은 바로 그 고립감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주변으로 시선을 넓혀보는 것이 좋다.
먼저 후아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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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녀 후아나 얼굴 세부 |
화면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을 보면 검은 옷을 입은 후아나가 서 있다.
주변 사람 대부분은 앉아 있거나 몸을 낮추고 있다. 그래서 후아나의 수직으로 선 몸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왕이라는 신분을 보여주는 화려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팔을 크게 벌리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지도 않는다. 몸 전체가 검은 옷 속에 잠긴 듯하다.
여기서 얼굴을 본다.
프라디야는 후아나의 얼굴을 울부짖는 표정으로 만들지 않았다.
눈물을 쏟지도 않는다.
입을 크게 벌리고 절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얼굴은 굳어 있다.
시선도 주변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환되지 않는다. 그녀의 눈과 몸은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절제된 표정 때문에 오히려 후아나에게 더 오래 눈길이 머문다.
화면에 격렬한 몸짓을 넣었다면 우리는 곧바로 슬픔을 읽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프라디야는 감정을 밖으로 터뜨리는 대신 안으로 눌러놓았다.
그래서 관람자는 자꾸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후아나의 시선을 따라가면 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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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녀 후아나와 필리프의 관 |
후아나만 보고 있으면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존재를 놓치기 쉽다.
그녀의 앞쪽에 놓인 관이다.
관은 화면의 중심축 가까이에 길게 자리한다.
사람의 얼굴처럼 즉시 시선을 끄는 대상은 아니지만, 후아나와 함께 보면 갑자기 존재감이 커진다.
후아나와 관.
서 있는 사람과 누워 있는 죽은 사람.
그 둘의 관계가 화면 한가운데 만들어져 있다.
더 눈여겨볼 것은 둘 사이의 거리다.
후아나는 관을 끌어안고 있지 않는다.
관 위에 쓰러져 있지도 않는다.
손으로 관을 붙잡지도 않는다.
두 대상 사이에는 공간이 남아 있다.
이 빈 공간이 묘한 긴장을 만든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죽은 남편에게 매달린 광기 어린 여왕’의 모습과 실제 화면은 꽤 다르다.
프라디야는 후아나를 관에 매달리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뜨려 놓았다.
그래서 그녀의 슬픔은 육체적인 행동보다 거리와 정지를 통해 전달된다.
모두가 앉아 있는데 후아나만 서 있다
이제 후아나에게서 시선을 조금 왼쪽으로 옮겨본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직자들과 수행원들이 땅에 앉거나 몸을 웅크리고 있다. 긴 이동에 지친 듯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에 깔려 있다.
이 사람들의 자세는 후아나와 완전히 다르다.
몸을 숙인 사람.
고개를 떨어뜨린 사람.
옷자락을 모으고 앉은 사람.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
그들은 추위와 피로를 느끼는 현실의 몸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반면 후아나는 꼿꼿하게 서 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프라디야는 후아나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왕관이나 황금빛 장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낮추고 후아나를 세운다.
그 단순한 차이 하나로 그녀는 군중 속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화면 속 인물들이 하나의 집단이라면 후아나는 그 집단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불은 따뜻한데 장면은 따뜻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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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녀 후아나, 불가에 앉은 수행원들 |
왼쪽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불이 보인다.
황량한 야외에서 사람들이 몸을 쉬고 있으니 불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화면 전체가 회색과 갈색, 검은색 계열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불 주변의 주황빛과 붉은빛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이 있는데도 그림이 따뜻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에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더 느껴진다.
불 가까이에는 인간적인 시간이 흐른다.
사람들은 피곤하고, 춥고, 쉬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옆에 서 있는 후아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그녀만 다른 시간 속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불은 그래서 단순한 풍경의 소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은 중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후아나는 조금 비켜서 있다.
화려한 색은 화면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다시 주변 인물들의 옷을 보면 프라디야가 색을 꽤 치밀하게 배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아나의 검은 옷과 관 주변의 어두운 색에 비해
주변에는 붉은색과 갈색, 흰색 계열이 조금씩 나타난다.
하지만 어느 색도 화면 전체를 화려하게 만들 정도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색은 낮게 가라앉아 있다.
특히 후아나의 검은 실루엣은 주변의 흙빛 풍경과 대비되면서도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
검정과 갈색, 회색이 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후아나는 눈에 띄면서도 동시에 풍경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왕실의 여왕을 그렸다고 생각하면 의외다.
금빛 장식과 화려한 직물, 궁정의 붉은 휘장 같은 것으로 권위를 강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런 장치가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남은 것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과 관, 그리고 황량한 땅이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공간이 비어진다
이제 화면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왼쪽에는 사람들이 비교적 촘촘하게 모여 있지만 오른쪽으로 갈수록 공간이 열린다.
사람의 밀도가 줄고 황량한 땅과 먼 풍경이 넓어진다.
이 비어 있는 공간 때문에 후아나의 고립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만약 화면 전체가 사람들로 빽빽했다면 그녀는 역사적 사건 속 한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라디야는 그녀 주변에 숨 쉴 틈보다 훨씬 넓은 공백을 남겨놓았다.
그 공백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멀리 보이는 풍경도 편안하지 않다.
하늘은 맑고 밝은 여행 풍경이 아니다.
낮게 깔린 구름과 탁한 대기가 화면 전체를 누르고 있다.
땅 역시 풍요로운 초록으로 덮이지 않았다.
갈색과 회색이 지배한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소이지만 머물고 싶어지는 장소는 아니다.
하늘이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조금 뒤로 물러서서 그림 전체를 다시 보면 의외로 하늘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물만 집중해서 보면 군중이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물들 위로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 넓은 하늘 덕분에 사람들은 더 작아 보인다.
후아나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화면의 중심인물이라 크게 느껴졌는데
전체 구도를 다시 보면 거대한 풍경 속에 서 있는 한 인간이다.
구름도 한 가지 색이 아니다.
회색과 푸른빛, 희미한 밝음이 뒤섞인다.
빛은 극적으로 후아나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그림에서 후아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신비로운 광선이 아니다.
그녀의 위치와 자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다.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씩 보면 더 쓸쓸해진다
이제 재미있는 방법으로 그림을 볼 수 있다.
후아나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하나씩 따라가 보는 것이다.
모두가 여왕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누군가는 옆을 향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자기 앞의 일에 잠겨 있다.
이 때문에 장면이 연극 무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만약 모든 사람이 후아나를 향해 놀라거나 슬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면 그림은 훨씬 설명적이었을 것이다.
“보라, 미쳐가는 여왕이다.”
그런 장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화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각자의 피로 속에 있다.
그래서 후아나의 고독이 더 커진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 한가운데 있는데도 혼자이기 때문에 외롭다.
다시 후아나의 손을 본다
마지막에는 얼굴이 아니라 손과 팔 쪽을 다시 보는 것이 좋다.
큰 역사화에서는 손짓이 감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손을 하늘로 치켜들 수도 있고, 가슴을 움켜쥘 수도 있고, 관을 붙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후아나에게서는 그런 과장된 몸짓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검은 옷 속에 몸이 단단히 묶여 있는 듯하다.
그 절제가 얼굴의 정지된 표정과 연결된다.
프라디야가 보여주는 후아나는 폭발하는 사람이 아니라 멈춰버린 사람에 가깝다.
주변 사람들은 움직이고 쉬고 서로 관계를 맺는다.
불은 타오른다.
연기는 올라간다.
구름은 흘러간다.
그런데 후아나만 멈춰 있다.
이 대비가 화면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가까이서 보고, 마지막에는 다시 멀리 선다
이 작품은 세부를 다 본 뒤 반드시 다시 몇 걸음 물러나 전체를 보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광녀 후아나’라는 제목 때문에 여왕의 얼굴을 찾았다.
그다음 관을 발견했다.
주변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봤다.
불을 봤고, 황량한 땅과 넓은 하늘까지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전체를 보면 처음과 조금 다른 그림이 보인다.
이 그림에는 광기를 직접 증명해주는 결정적인 몸짓이 없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절규하는 여자도 없다.
관을 끌어안고 쓰러진 여자도 없다.
프라디야가 화면 한가운데 세운 것은 훨씬 조용한 모습이다.
검은 옷을 입고 꼿꼿하게 서 있는 여자.
그 앞의 관.
그리고 그녀와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그래서 《광녀 후아나》를 오래 보고 있으면 제목의 ‘광녀’보다 다른 것이 더 크게 다가온다.
고립이다.
사람은 가득한데 아무도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불은 타고 있는데 따뜻하지 않다.
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녀의 시간은 멈춘 것 같다.
그리고 거대한 화면 한가운데에서 후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광기의 표정이 아니라, 바로 그 침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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