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65편 귀도 레니 《히포메네스와 아탈란타》 세부 감상, 달리는 두 몸이 엇갈리는 순간

 

귀도 레니, 《히포메네스와 아탈란타》, 1618~1619년경, 프라도 미술관
귀도 레니 작《히포메네스와 아탈란타》


처음 이 그림을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분명 두 사람이 달리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달리기 자세와는 전혀 다르다.

아탈란타는 몸을 낮추면서 한쪽으로 크게 기울고, 

히포메네스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며 앞으로 나간다. 

두 사람의 팔과 다리는 거의 춤을 추는 것처럼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자세에는 이유가 있다.

아탈란타는 지금 황금사과를 줍기 위해 속도를 늦추고 있고, 

히포메네스는 그 틈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프라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순간 히포메네스의 등 뒤 손에는 

마지막 세 번째 사과가 아직 남아 있다.

64편에서 이야기의 배경을 알았으니, 이제 신화는 잠시 내려놓자.

이번에는 두 사람의 몸부터 천천히 따라가 보자.


먼저 두 사람을 한꺼번에 보자


조금 떨어져서 그림 전체를 보면 두 사람은 거의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배경보다 사람이 먼저 보인다.

그것도 가만히 서 있는 두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은 왼쪽으로 몸을 뻗고, 다른 사람은 오른쪽으로 뻗는다.

두 사람의 몸이 서로 교차한다.

그런데 묘하게 균형이 맞는다.

아탈란타가 왼쪽 아래로 몸을 낮추면 히포메네스는 오른쪽 위로 몸을 일으킨다. 

아탈란타의 팔이 한쪽으로 길게 뻗으면 히포메네스의 팔은 반대쪽으로 펼쳐진다.

프라도에서는 이런 두 인물의 배치를 거의 대칭에 가까운 균형으로 설명한다. 

동시에 인물들의 몸이 만드는 대각선이 달리기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그러니 이 그림은 한 사람씩 떼어서 보기 전에 둘을 함께 보는 것이 좋다.

둘은 경쟁하고 있지만 그림 안에서는 서로가 있어야 자세가 완성된다.

한 사람이 내려가고 다른 사람이 올라간다.

한 사람이 멈칫하고 다른 사람이 지나간다.

그 엇갈림이 그림 전체를 움직인다.


아탈란타의 얼굴부터 내려가 보자


몸을 낮추는 아탈란타. 한 손에 이미 주운 황금사과를 쥐고 있다.
황금사과를 든 아탈란타


먼저 아탈란타를 보자.

몸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얼굴에서는 힘겨운 표정을 거의 찾기 어렵다.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몰아쉬지도 않는다. 

이를 악물지도 않는다. 

달리기에서 이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운동선수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고개는 아래로 기울어져 있다.

시선도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향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왜 몸 전체가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황금사과 때문이다.

그런데 얼굴만 보면 아주 격렬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귀도 레니는 목숨이 걸린 경주를 그리면서도 

아탈란타의 표정을 크게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움직임은 몸에 맡기고 얼굴은 차분하게 남겨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에는 이상한 긴장이 생긴다.

몸은 급한데 얼굴은 고요하다.


아탈란타의 몸은 하나의 긴 곡선처럼 움직인다


이제 얼굴에서 목과 어깨를 따라 내려가 보자.

아탈란타의 몸은 꼿꼿하게 세워져 있지 않다.

상체가 크게 기울어 있다.

한쪽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선을 보면 몸 전체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그리고 그 곡선은 허리에서 끝나지 않고 다리의 움직임으로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레니가 단순히 ‘몸을 숙인 여자’를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탈란타는 달리던 중이다.

그러면서 아래에 있는 사과를 향해 몸을 내려야 한다.

달리기와 줍기가 한 몸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자세가 복잡해진다.

상체는 아래로 향하지만 다리는 아직 경주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한순간 정지된 그림인데도 바로 다음 순간 몸이 다시 앞으로 튀어나갈 것 같다.

프라도의 쉬운 작품 설명에서도 두 인물의 다리와 

휘날리는 천이 움직임을 강하게 만들어낸다고 짚는다.


손을 보면 이야기가 더 선명해진다


아탈란타의 손을 보자.

한 손에는 이미 황금사과 하나가 들어 있다.

그리고 다른 손은 아래쪽을 향한다.

여기서 이 그림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읽힌다.

화가는 사과 세 개를 모두 크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하나를 주웠다는 사실과 또 

다른 사과를 향해 몸을 낮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아탈란타의 손은 단순한 아름다운 손짓이 아니다.

손을 따라가면 경주의 흐름이 보인다.

얼굴에서 시작한 시선이 팔을 타고 내려가고, 손을 지나 황금사과에 도착한다.

그 작은 사과 때문에 거대한 몸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이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면에서 가장 큰 것은 사람의 몸인데, 그 몸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작은 물건이다.


이제 히포메네스를 보자


몸을 비틀며 앞으로 나아가는 히포메네스. 휘날리는 붉은 천이 움직임을 더욱 크게 만든다.
달려 나가는 히포메네스

아탈란타에서 히포메네스로 눈을 옮기면 방향이 달라진다.

아탈란타가 아래로 내려간다면 히포메네스는 앞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몸 역시 정면을 향하지 않는다.

가슴과 허리가 틀어져 있고, 팔은 양쪽으로 벌어져 있다.

특히 한쪽 팔은 뒤로 향한다.

그 손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등 뒤로 감춘 손에 마지막 황금사과가 들려 있다. 

프라도의 현재 작품 해설은 레니가 

히포메네스가 세 번째 사과를 던지기 직전을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이걸 알고 다시 보면 그림이 조금 달라진다.

히포메네스는 단순히 아탈란타를 앞질러 달리는 것이 아니다.

아직 한 번 더 그녀를 멈추게 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

화가는 그것을 화면 한가운데 크게 보여주지 않았다.

등 뒤의 손에 숨겨두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사람의 몸이 보이고, 

그다음에는 아탈란타가 줍는 사과가 보이고, 

더 자세히 보아야 히포메네스의 손에 남은 사과를 발견하게 된다.

큰 그림 속에 작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두 사람의 다리를 보면 정말 달리기 시작한다


서로 엇갈려 뻗은 두 사람의 다리가 경주의 속도와 방향을 보여준다.
엇갈리는 두 사람의 다리


이제 아래쪽을 보자.

얼굴과 상체만 보면 두 사람이 

아름다운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리를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의 다리는 길게 뻗어 서로 다른 방향을 만든다.

한쪽 발은 땅을 딛고, 다른 다리는 앞으로 혹은 뒤로 뻗는다.

특히 두 사람의 다리가 화면 아래쪽에서 서로 교차하고 벌어지는 모습 때문에 

그림이 갑자기 빨라진다.

그런데 실제 달리기 장면을 사진처럼 재현한 것은 아니다.

이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해보면 꽤 어렵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레니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달리기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다리는 운동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이 된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두 사람의 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으면서 넓은 화면을 채운다.


피부가 유난히 밝아 보이는 이유


이제 인물의 피부를 보자.

두 사람의 몸은 배경보다 훨씬 밝다.

특히 어깨와 가슴, 배와 허벅지처럼 앞으로 나온 부분에 빛이 닿는다.

반대로 몸이 돌아가는 곳에는 부드러운 그림자가 생긴다.

그래서 피부가 평평한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밝은 부분에서 어두운 부분으로 천천히 넘어가면서 몸의 둥근 부피가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어두운 배경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빛과 어둠의 경계가 모두 날카로운 것은 아니다.

피부에서는 밝음과 어둠이 상당히 부드럽게 이어진다.

팔을 따라가도 그렇고 허벅지를 보아도 그렇다.

그 부드러운 변화 때문에 피부가 매끈하게 느껴진다.

레니가 그린 몸은 땀과 먼지로 뒤덮인 실제 경주자의 몸이라기보다 

잘 다듬어진 조각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에 더 가깝다.


두 사람에게 걸친 천을 놓치면 안 된다


인체가 워낙 강해서 처음에는 천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천을 따로 보기 시작하면 이 그림의 움직임이 훨씬 선명해진다.

두 사람의 몸에는 옷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적은 천만 걸쳐져 있다.

그리고 그 천은 몸을 감싸기보다 뒤쪽으로 흘러간다.

달리는 방향과 몸의 회전을 따라 천이 휘어진다.

특히 곡선을 이루며 날리는 천은 딱딱한 팔다리의 선과 다른 움직임을 만든다.

몸은 단단하다.

천은 부드럽다.

몸의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멈춰 있지만 천은 아직 공기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 바람을 볼 수 없는데도 

두 사람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프라도 역시 다리의 자세와 함께 휘어지는 천을 

이 그림에서 운동감을 만드는 요소로 설명한다.


그런데 두 사람 뒤에도 사람이 있다


주인공들의 밝은 몸에서 잠시 눈을 떼고 배경을 보자.

여기서 의외의 장면이 나타난다.

완전히 텅 빈 공간이 아니다.

멀리 작은 사람들이 있다.

프라도의 작품 설명에서도 배경에 풍경과 바다가 펼쳐지고 

작은 인물들이 보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정말 작다.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가 화면을 거의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 크기 차이 때문에 두 주인공은 더욱 거대해 보인다.

실제 사람이 달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라기보다 

신화 속 영웅들이 우리 앞에서 거대한 몸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긴다.

배경의 사람들은 경주가 혼자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준다.

누군가 이 승부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레니는 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보여주지 않는다.

관중은 멀리 밀어두고 두 주인공만 앞으로 끌어냈다.


멀리 있는 풍경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그보다 더 뒤를 보자.

낮은 지평선과 풍경이 펼쳐져 있다.

멀리 바다도 보인다.

그런데 배경이 화려하지 않다.

산과 나무와 건물을 세세하게 구경하게 만드는 풍경화가 아니다.

색도 앞의 인물들보다 훨씬 차분하다.

이 때문에 눈은 자연스럽게 다시 두 사람에게 돌아온다.

앞에서는 몸이 크게 교차한다.

천이 날리고 다리가 뻗는다.

그런데 뒤쪽 세계는 조용하다.

앞과 뒤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두 사람의 움직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넓고 고요한 무대 앞쪽에서 두 배우만 갑자기 움직이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닿을 듯하면서도 닿지 않는다


이제 화면 가운데를 다시 보자.

두 사람의 몸은 아주 가깝다.

팔다리가 서로 얽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움직임을 유지한다.

이 거리가 묘하다.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될 남녀다.

하지만 지금은 연인이 아니라 경쟁자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를 앞서려고 한다.

그래서 그림에서도 둘은 가까우면서 떨어져 있다.

몸의 선은 서로 연결되지만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하는 듯하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벌어진다.

이것이 그림에 긴장을 만든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끝났을 것이다.

반대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약해졌을 것이다.

레니는 두 몸이 가장 강하게 연결되면서도 아직 하나가 되지 않는 거리를 골랐다.


화면 한가운데보다 작은 사과를 다시 보자


아탈란타는 몸을 낮추고 히포메네스는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몸이 화면에 강한 긴장을 만든다.
엇갈려 달리는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


이제 마지막으로 처음의 황금사과로 돌아가자.

거대한 화면에서 사과는 정말 작다.

세로가 2미터를 넘고 가로가 거의 2.8미터에 이르는 그림이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의 몸은 거의 실제 사람보다 크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그 거대한 몸이 아니다.

조그마한 사과다.

아탈란타의 손에 하나가 있다.

그녀가 몸을 낮추는 쪽에도 사과가 있다.

그리고 히포메네스의 등 뒤 손에는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처음 볼 때와 알고 난 뒤 볼 때 시선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몸을 본다.

그다음에는 움직임을 본다.

그리고 결국 작은 사과를 찾게 된다.


다시 멀리서 보면 두 몸이 하나의 모양이 된다


이제 그림에서 몇 걸음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얼굴도 손도 사과도 잠시 잊는다.

두 사람의 몸만 하나의 큰 형태로 본다.

그러면 아탈란타와 히포메네스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펼쳐지면서 

화면 중앙에 커다란 X자와 비슷한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느껴진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아탈란타가 몸을 낮추는 만큼 히포메네스가 반대쪽을 채운다.

서로 다른 자세인데 둘을 합치면 하나의 균형이 된다.

프라도가 이 작품에서 말하는 거의 대칭적인 균형과 

대각선의 움직임도 바로 이런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아주 역설적이다.

목숨이 걸린 경주를 그리고 있는데 차분하다.

두 사람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그림 전체는 안정되어 있다.

몸은 크게 뒤틀리는데 아름다움은 무너지지 않는다.

귀도 레니가 만든 장면은 실제 경기장의 한순간이라기보다 

달리기의 움직임을 가장 아름다운 모양으로 멈춰놓은 장면에 가깝다.

프라도에서 이 그림을 만나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두 사람의 몸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만 보자.

그다음 아탈란타의 얼굴에서 손으로 내려가 작은 황금사과를 찾는다.

이번에는 히포메네스의 몸을 따라가 등 뒤의 손을 찾아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몇 걸음 물러나 두 사람을 한꺼번에 본다.

그러면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만 보였던 두 사람의 자세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탈란타는 멈추면서 달리고 있다.

히포메네스는 달리면서 다음 사과를 준비하고 있다.

한 사람의 몸은 아래로 내려가고, 다른 사람의 몸은 그 순간 앞으로 빠져나간다.

귀도 레니는 긴 경주 전체를 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바로 그 순간을, 

두 개의 몸과 몇 개의 작은 황금사과만으로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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