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60편 안토넬로 다 메시나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 북유럽의 눈과 이탈리아의 몸이 만난 순간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만나면 조금 낯선 느낌이 든다.

죽은 그리스도를 다룬 그림은 수도 없이 많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그리기도 하고, 

성모가 아들의 시신을 품은 피에타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죽은 그리스도의 몸을 화면 바로 앞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그 뒤에 작은 천사 하나를 붙여놓았다.

그리스도는 이미 죽었다. 천사는 그 몸을 받치며 슬퍼한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단순히 슬픈 종교화라고만 보기에는 훨씬 복잡하다. 

15세기 유럽 미술의 두 흐름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쪽에는 플랑드르 회화의 놀라울 정도로 세밀한 관찰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르네상스 이탈리아가 발전시켜 온 인체와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다.

그 두 세계를 연결한 화가가 시칠리아 출신의 안토넬로 다 메시나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작품을 1475~1476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무판에 혼합기법으로 그렸으며 크기는 74×51cm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 1475~1476년경, 프라도 미술관
안토넬로 작《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


거대한 제단화가 아니라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그림이다.


이탈리아 남쪽 끝에서 태어난 르네상스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이름부터 출신지를 말해준다.

‘다 메시나’는 말 그대로 ‘메시나 출신’이라는 뜻이다. 

그는 약 1430년 시칠리아의 항구도시 메시나에서 태어나 

1479년 그곳에서 죽었다. 

프라도는 그를 남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들인 화가로 설명한다.

그런데 안토넬로를 이해하려면 시칠리아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 시절 그가 미술을 배운 곳으로 알려진 곳은 나폴리다. 

당시 나폴리는 이탈리아 도시이면서 동시에 

지중해 여러 지역의 문화가 뒤섞이는 국제적인 공간이었다. 

특히 아라곤 왕조 아래에서 이베리아반도와 북유럽 미술의 

영향이 들어오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안토넬로는 이곳에서 콜란토니오에게 배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나폴리에서는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상당히 새롭게 느껴졌을 

플랑드르 회화를 접할 수 있었다. 

프라도 역시 안토넬로가 나폴리에서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화가들과 접촉하고, 

얀 반 에이크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같은 

북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할 가능성이 있었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안토넬로의 특별한 위치가 생긴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은 인간의 몸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화면 안에 설득력 있는 공간을 만드는 문제에 깊이 몰두하고 있었다.

반면 플랑드르 화가들은 아주 작은 사물과 

피부, 머리카락, 보석, 천, 풍경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특히 유화 물감의 투명한 층을 겹치면서 빛과 색을 깊고 섬세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다.

안토넬로는 이 두 전통 사이에 서 있었다.


1475년, 안토넬로가 베네치아로 향하다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를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하나 더 있다.

베네치아다.

안토넬로는 1475년 베네치아로 갔다. 

오늘날에는 베네치아가 르네상스 회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당시에도 이곳은 동서 교역이 활발한 국제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안토넬로와 연결되는 화가가 조반니 벨리니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벨리니의 피에타 그림들을 중요한 비교 대상으로 제시한다.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1460년경, 브레라 미술관
조반니 벨리니, 《피에타》


죽은 그리스도를 화면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천사를 등장시키는 도상은 

벨리니의 작품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조심해서 봐야 한다.

이 그림이 정확히 어디에서 완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었다.

프라도의 현재 작품 설명은 안토넬로가 베네치아에서 돌아온 뒤 

메시나에서 이 작품을 그렸다고 설명하며, 뒤쪽에 보이는 도시를 메시나로 본다. 

반면 프라도 백과사전의 작품 해설은 제작지가 베네치아였는지, 

메시나로 돌아온 뒤였는지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작품은 일반적으로 안토넬로 생애 마지막 몇 년에 속하는 

성숙기의 그림으로 평가된다.

이 차이는 오히려 이 그림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한 도시의 미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뜻이다.


죽은 그리스도를 왜 이렇게 가까이 보여주었을까


그림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수난 이후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 몸은 내려졌다. 

그러나 안토넬로는 십자가형의 사건 자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군중도 없고, 수많은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극적인 이야기도 없다.

이미 사건이 끝난 뒤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은 몸과 그것을 애도하는 천사다.

이런 유형의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차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묵상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이 관람자와 가까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멀리서 일어난 성경 속 사건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는 경험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프라도의 쉬운 작품 해설에서도 이 그림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죽은 그리스도를 천사가 뒤에서 받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안토넬로는 이 종교적인 주제를 감정만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무게가 있다.

몸은 실제 공간을 차지하는 육체처럼 느껴진다.

이 점에서 이 그림은 중세적인 성상과 

르네상스 회화의 차이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신성한 존재를 상징적으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몸을 가진 그리스도로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에서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그리스도가 실제 인간의 몸을 가지고 고통받고 죽었다는 사실이 

구원의 이야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북유럽처럼 세밀하고, 이탈리아처럼 단단하다


안토넬로의 그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가까이에서는 아주 작은 것까지 본다.

멀리서는 몸과 공간을 크게 본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작품에서 북유럽에서 유래한 세밀한 묘사와 

남유럽적인 인체·부피·원근법에 대한 관심이 함께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특히 풍경과 그리스도의 머리카락에서는 섬세한 붓질이 두드러지고, 

인체에서는 입체적인 형태와 공간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다.

이 조합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강력했다.

세밀함만 뛰어나면 그림이 작은 사물들의 집합처럼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인체와 원근법만 강조하면 화면 전체가 구조적으로는 웅장하지만 

피부와 빛의 섬세한 감각은 약해질 수 있다.

안토넬로는 둘을 결합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과 

한 걸음 물러나 전체 공간을 보고 싶은 욕망이 동시에 생긴다.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그리스도의 육체는 화면을 지배하지만, 

그 뒤에는 멀리 이어지는 풍경과 도시가 있다.

앞에는 죽음이 있고 뒤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세계가 펼쳐진다.

그 관계가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어져 있는지는 

그림을 직접 들여다볼 때 더 선명해진다.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르네상스를 피렌체 중심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흔히 피렌체와 로마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15세기 유럽의 미술은 훨씬 복잡한 길을 따라 움직였다.

작품이 이동했다.

화가가 이동했다.

상인과 외교관과 성직자가 이동했고, 그들과 함께 그림과 새로운 기법도 이동했다.

플랑드르에서 발전한 회화의 성취가 나폴리로 들어왔고, 

시칠리아 출신 화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화가는 다시 베네치아로 가서 북부 이탈리아의 회화를 경험했다.

안토넬로의 작품 안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미술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래서 안토넬로를 단순히 ‘유화를 잘 사용한 이탈리아 화가’라고

기억하는 것보다 이렇게 기억하는 편이 좋다.

그는 15세기 유럽 회화의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한 화가였다.

플랑드르의 눈으로 세부를 보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감각으로 몸과 공간을 세웠다.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는 그 결합이 완숙해진 

말년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메시나에서 스페인으로, 그리고 프라도까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이 작은 그림이 

오늘날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있다는 것도 긴 이동의 결과다.

프라도가 공개한 현재의 소장 이력에 따르면 

이 작품은 17세기 스페인에서 확인된다. 

1633년에는 제7대 레모스 백작부인 카탈리나 데 라 세르다 이 산도발과 

관련된 기록이 있으며, 이후 몬포르테 데 레모스의 콘셉시온 수도원에 있었다. 

19세기에는 여러 소장자를 거쳤고, 1881년 로사 멘딜루세가 구입한 뒤 

그 후손 후안 미겔 알비수에게 전해졌다. 

프라도 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한 것은 1965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의 귀속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명확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프라도의 옛 신규취득 목록에는 한때 베네치아의 익명 화가와 연결되고 

치마 다 코넬리아노에게 귀속된 흔적도 남아 있다. 

지금은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작품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작은 나무판 하나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미술의 교류를 품고, 

다시 수백 년에 걸쳐 스페인에서 이동하다가 프라도에 도착한 셈이다.


이 그림 앞에서는 먼저 거리를 느껴보자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이 그림은 죽음의 사건을 멀리서 설명하려는 그림이 아니다.

관람자와 죽은 그리스도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그림이다.

그래서 안토넬로는 성경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쳐놓는 대신 

인물을 앞으로 끌어온다. 

동시에 그 뒤에는 현실처럼 이어지는 세계를 남겨둔다.

바로 이곳에서 안토넬로의 두 눈이 만난다.

하나는 머리카락과 피부, 풍경의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북유럽 회화의 눈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몸을 부피와 무게를 가진 존재로 바라보고, 

그 몸을 실제 공간 속에 세우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눈이다.

그래서 프라도에서 이 작품 앞에 서게 되면 

처음부터 상징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먼저 가까움을 느끼면 된다.

왜 그리스도의 몸이 이렇게 내 앞으로 나와 있는지, 

그 뒤에 왜 다시 넓은 세계가 펼쳐지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면 74×51cm에 불과한 작은 그림이 갑자기 커진다.

그 안에는 죽은 그리스도와 슬퍼하는 천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15세기 플랑드르와 나폴리, 시칠리아와 베네치아가 함께 들어 있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는 그 서로 다른 세계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나게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만남 때문에 《천사가 받치는 죽은 그리스도》는 

프라도에서 르네상스 회화를 따라 걸을 때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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