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테냐의 《성모의 죽음》 앞에 섰다면 먼저 한 걸음 떨어져
화면 전체를 보는 것이 좋다.
그림은 작다. 세로 54.5cm, 가로 42cm에 불과하다.
![]() |
| 성모의 죽음 전체 |
그런데 작은 화면 안에 사람은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그들 뒤로 방이 이어지며, 더 멀리 창밖의 호수와 다리, 도시까지 펼쳐진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먼저 이 공간의 깊이를 느껴보자.
성모가 누운 침상이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 주위에는 사도들이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시선을 밀어 넣으면
정면의 커다란 창에 닿는다.
그 창 너머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이 그림을 보는 재미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가장 먼저 성모를 찾는다
화면 아래쪽으로 눈을 내리면 성모가 누워 있다.
그녀의 몸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침상 위에 길게 놓여 있다.
주변의 사도들은 대부분 서 있기 때문에 누워 있는 성모의 수평선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성모의 눈은 감겨 있다.
몸에는 움직임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의식을 치르고 있는데도 성모만은 완전히 정지해 있다.
이 정지와 주변 사도들의 움직임이 서로 대비된다.
침상도 화려하지 않다.
간결한 나무 구조 위에 천이 덮여 있고, 머리 아래에는 베개가 놓여 있다.
만테냐는 성모의 마지막 순간을 지나치게 호화로운 장식으로 둘러싸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에게 눈이 간다.
성모의 얼굴에서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녀를 둘러싼
사도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난다.
![]() |
| 성모와 사도들 |
열한 명이 같은 방식으로 슬퍼하지 않는다
이제 사도들을 보자.
화면에는 열한 명의 사도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만테냐가 이들을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자세로 반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책을 읽는다.
누군가는 성수를 들고 있다.
누군가는 향을 피운다.
다른 이들은 촛불을 들고 노래한다.
입이 살짝 열린 얼굴도 보인다.
프라도 미술관은 성 요한을 제외한
사도들이 촛불을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이 부르는 것은 『황금전설』에 기록된 장례 의식과 연결되는 찬송이다.
하지만 그림 앞에서는 먼저 ‘무슨 노래인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얼굴을 하나씩 보는 편이 더 재미있다.
같은 죽음을 바라보고 있지만 표정과 자세가 조금씩 다르다.
고개를 숙이는 정도도 다르고, 시선이 향하는 곳도 다르다.
만테냐는 슬픔을 한 가지 표정으로 통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부짖는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다.
프라도의 쉬운 감상 자료에서도 사도들의 슬픔은 드러나지만
과장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화면 전체가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
사람은 많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가운데 흰 수염의 노인을 본다
![]() |
| 사도들의 장례 의식 |
이제 성모의 침상 뒤쪽, 화면 중앙을 보자.
흰 수염을 기른 인물이 책을 들고 있다.
성 베드로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 달리 전례복을 갖춰 입고 장례 의식을 이끌고 있다.
손에는 미사 경본이 들려 있다.
여기서 만테냐가 사람들을 배치한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성 베드로를 화면 중앙에 놓았지만 그를 거대한 주인공처럼 만들지는 않았다.
다른 사도들과 거의 같은 공간에 서 있다.
그 옆에는 성수를 담은 그릇을 든 사도가 있다.
그는 성모를 향해 축복의 동작을 한다.
책, 성수, 촛불, 향.
이 작은 물건들이 모이면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 단순히 사람들이 임종한 이를
둘러싸고 있는 장면이 아니라 실제 장례 의식이라는 사실이 눈앞에서 구체화된다.
등을 보이고 선 사도를 놓치지 말자
이 그림에서 특히 눈여겨볼 인물은 얼굴이 잘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사도다.
그는 성모의 침상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향로를 움직이고 있다.
왜 굳이 등을 보여줬을까.
이 인물이 그림의 깊이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우리와 성모 사이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사도들의 뒤에 서서 장례 의식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프라도 역시 이 인물이 앞뒤의 사도들을 공간적으로 갈라놓으면서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향로도 자세히 보자.
향로를 매단 가느다란 사슬이 아래로 내려온다.
사슬의 곡선 때문에 향로가 가만히 멈춰 있다기보다
막 흔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생긴다.
정지된 그림 속에 작은 움직임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성모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위로 향로는 흔들린다.
이 작은 대비가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차이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왼쪽의 종려나무 가지를 찾는다
![]() |
| 성 요한과 종려나무 |
이번에는 화면 왼쪽을 보자.
앞쪽에 젊어 보이는 사도가 있다.
다른 사도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인물은
길쭉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성 요한이다.
여기서는 종려나무 가지가 있다는 사실부터 확인하면 된다.
가지가 위로 길게 뻗으면서 주변의 촛불이나 사람들의 수직적인 자세와 어울린다.
동시에 다른 사도들이 들고 있는 물건과 모양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성 요한을 구별하는 표지가 된다.
프라도는 성 요한을 화면 왼쪽의 첫 번째 인물로 설명하며,
그가 다른 사도들과 달리 촛불 대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고 명시한다.
그러니 이 그림에서 인물 이름을 하나씩 외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왼쪽의 종려나무 가지.
가운데의 책.
성수.
향로.
촛불.
이 물건들을 따라가면 장면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촛불이 만드는 수직선을 본다
이제 촛불을 따라 눈을 움직여보자.
길고 가느다란 촛불들이 사도들의 몸과 함께 위로 뻗어 있다.
이 수직선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림 전체를 보면 성모의 침상은 좌우로 길게 놓여 강한 수평선을 만든다.
반대로 사도들의 몸과 촛불, 뒤쪽 건축의 기둥은 위아래로 뻗으며 수직선을 만든다.
누워 있는 성모는 수평이다.
살아 있는 사도들은 수직이다.
그 둘이 화면 한가운데에서 만난다.
뒤쪽의 커다란 창 역시 수평과 수직의 구조를 반복한다.
프라도가 이 작품의 구성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런 수평선과 수직선의 정교한 균형이다.
그래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화면이 흐트러져 보이지 않는다.
슬픔은 있지만 혼란은 없다.
이제 사람 대신 바닥을 본다
인물들만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려보자.
바닥에 규칙적으로 놓인 타일이 보인다.
그 선들은 뒤쪽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우리 눈은 그 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앞에서 시작한 선들이 사도들의 발 사이를 지나 화면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원근법이 실제 그림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을 사용했다’고 외우는 것보다
이 바닥을 한 번 보는 편이 훨씬 쉽다.
바닥의 선을 따라가면 방이 평평한 무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도들이 앞뒤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이 느껴지고, 그 뒤에 다시 공간이 이어진다.
프라도 역시 바닥 타일을 이 그림의 깊이감을 만드는 중요한 장치로 설명한다.
사도들 사이에 길이 하나 열린다
조금 멀리서 화면 전체를 다시 보면 사람들의 배치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도들은 성모 주변을 무작정 에워싸고 있지 않다.
양쪽으로 나뉘어 서면서 가운데에 공간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종의 U자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 열린 부분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화면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끝에 창이 있다.
여기서 그림이 갑자기 열린다.
지금까지는 사람으로 가득 찬 실내였다.
그런데 창 너머에는 물과 하늘이 펼쳐져 있다.
답답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멀어진다.
창문을 하나의 그림처럼 바라보자
![]() |
| 만토바 풍경 |
이제 성모와 사도들을 잠시 잊고 화면 한가운데 뒤쪽의 창만 보자.
마치 그림 속에 또 하나의 작은 풍경화가 걸려 있는 것 같다.
가까운 곳에는 넓은 물이 보인다.
그 위로 긴 다리가 뻗는다.
다리는 멀어질수록 가늘어진다.
그리고 훨씬 뒤쪽에는 건물과 성벽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가 보인다.
이곳은 막연하게 상상한 성서 속 풍경이 아니다.
만테냐가 알고 있던 만토바의 실제 풍경을 바탕으로 한 장면이다.
프라도는 이곳에서 만토바를 둘러싼 호수와 그 위의 다리,
멀리 보이는 보르고 디 산 조르조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풍경을 이탈리아 회화의 초기 지형학적 풍경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여기서 ‘지형학적 풍경’이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실제 장소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그린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까운 호수는 크게 보인다.
다리는 점점 작아진다.
맨 뒤의 마을은 훨씬 더 작아진다.
만테냐는 크기의 변화를 이용해
작은 나무판 뒤에 엄청나게 먼 거리를 만들어냈다.
실내와 바깥 풍경을 함께 보자
이제 다시 한 걸음 물러나자.
앞에는 성모가 있다.
그 주변에는 열한 사도가 있다.
그 뒤에는 창이 있고, 창 너머에는 호수와 다리와 도시가 있다.
이 그림에는 사실 두 개의 공간이 겹쳐 있다.
하나는 장례 의식이 벌어지는 실내다.
다른 하나는 햇빛과 공기가 느껴지는 바깥 세계다.
실내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창밖은 넓고 비어 있다.
실내에서는 한 사람의 삶이 끝나고 있다.
하지만 창밖의 세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리 이어진다.
만테냐는 이 대비를 과장하지 않는다.
하늘에 극적인 빛을 쏟아붓지도 않고,
풍경을 슬픔의 상징처럼 어둡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창을 열어놓는다.
그래서 오히려 묘한 감정이 생긴다.
한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멈춘 순간인데 바깥의 세계는 계속 존재한다.
그런데 위쪽이 어딘가 갑작스럽다
화면 위쪽도 자세히 보자.
현재 그림은 위가 잘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공간은
만테냐가 처음 설계했던 공간과 다르다.
원래는 위쪽으로 방의 건축 공간이 더 이어졌고,
그 위에는 그리스도가 성모의 영혼을 맞이하는 장면이 있었다.
현재 그 부분은 프라도의 패널과 떨어져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화면 위쪽을 보면
지금의 구도가 왜 유난히 압축되어 보이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없는 부분을 머릿속으로 억지로 채울 필요는 없다.
프라도에서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그림은 현재의 모습이다.
오히려 잘린 상태 때문에 시선이 성모와 사도들의 인간적인
장례 의식에 더욱 강하게 집중되는 면도 있다.
마지막에는 얼굴보다 공간을 보자
이 그림을 다 보고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해보자.
이번에는 어느 한 사람도 보지 않는다.
성모의 침상에서 시작해 바닥을 보고, 사도들의 몸 사이를 지나
창으로 들어간 다음, 호수와 다리를 따라 멀리 도시까지 시선을 보내보자.
아주 작은 그림인데 눈은 꽤 먼 여행을 한다.
앞에서 뒤로.
실내에서 실외로.
사람에게서 풍경으로.
죽음을 맞은 성모에게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어지는 바깥 세계로.
이것이 만테냐가 만든 공간의 힘이다.
그림 속에는 열한 명의 사도와 성모가 있고,
책과 촛불과 성수와 향로와 종려나무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데서 감상을 끝내면 조금 아쉽다.
모든 것을 보고 난 뒤에는 다시 거리를 봐야 한다.
성모는 바로 눈앞에 있다.
사도들은 그 주위를 둘러싼다.
그 뒤로 방이 물러난다.
창 너머에는 호수가 펼쳐진다.
다리가 멀어진다.
그리고 아주 작은 만토바의 건물들이 시야 끝에 남는다.
세로 54.5cm의 나무판이지만 그 안의 공간은 그보다 훨씬 깊다.
프라도에서 만테냐의 《성모의 죽음》을 만난다면 가까이에서
세부를 본 뒤 반드시 다시 한 걸음 물러서 보자.
그러면 성모를 둘러싼 사도들의 무리가 하나의 문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우리의 눈이 멀리 빠져나가는 순간이 보인다.
작은 방 안에서 죽음의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그 너머로 호수가 빛나고 다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저 멀리 도시는 그대로 서 있다.
만테냐가 이 작은 그림 안에 그려놓은 것은 성모의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시간이 멈추는 순간에도 끝없이 계속되는 공간까지 함께 그려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