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41편 티치아노 《다나에》 세부 감상, 황금빛 비가 내려오는 순간

 프라도 미술관의 티치아노 《다나에》 앞에 서면 처음부터 신화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먼저 그림이 우리 눈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따라가 보면 된다.

프라도미술관에 있는티치아노의 다나에
티치아노 작 [다나에] 프라도

화면 왼쪽에는 침대에 몸을 기댄 젊은 여인이 있다. 

오른쪽에는 몸을 앞으로 숙인 늙은 여인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정확히 말하면 다나에의 몸 위쪽으로 

짙은 구름과 황금빛 입자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결국 이 세 부분에서 만들어진다.

누워 있는 젊은 몸, 황금빛 비, 그것을 받아내려는 늙은 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다나에의 몸

티치아노작 다나에중 다나에의 몸
다나에의 몸

시선은 자연스럽게 화면 왼쪽의 다나에에게 간다.

그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상체는 베개에 기대고 있고, 두 다리는 오른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다. 

몸은 완전히 똑바로 눕지 않는다. 상체에서 허리, 허벅지, 무릎으로 

이어지는 선이 완만하게 굽어 있다.

그래서 몸이 하나의 긴 곡선을 만든다.

티치아노는 이 곡선을 아주 또렷한 윤곽선으로 잘라내지 않는다. 

피부와 시트,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조금씩 녹아든다. 

몸의 형태는 분명하지만 조각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살이 빛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가슴과 배, 허벅지에 닿는 빛은 거의 흰색에 가까운 밝은 살빛으로 올라온다. 

그 옆에는 붉은 기운과 갈색 그림자가 붙는다. 

이런 미세한 색의 차이가 몸을 평평한 면이 아니라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육체로 만든다.

다나에의 몸을 자세히 보면 해부학적 선을 자랑하려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근육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 피부의 온도와 무게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몸의 경계가 침대 위 직물과 만나는 곳에서도 딱 끊어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관람자는 ‘그려진 몸’을 보는 동시에 촉감까지 상상하게 된다.

얼굴은 황금빛 비를 향한다

티치아노 작 다나에의 얼굴
다나에의 얼굴

이제 얼굴을 본다.

다나에의 머리는 화면 왼쪽에 있지만 시선은 오른쪽 위를 향한다. 

바로 황금빛 비가 내려오는 방향이다.

눈은 완전히 크게 뜨여 있지 않다. 입술도 단단히 다물려 있지 않는다. 

얼굴 전체가 긴장으로 굳었다기보다 어떤 감각을 받아들이는 순간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정이 극적인 놀람으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갑자기 침입한 존재를 보고 몸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몸은 그대로 침대에 놓여 있고 얼굴만 비스듬히 돌아가 있다.

덕분에 이 장면은 사건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워진다.

황금빛이 쏟아지고, 다나에는 그것을 바라본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 장면을 유피테르가 황금비의 모습으로 

다나에를 소유하는 순간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화면에서 유피테르의 인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신은 몸 대신 빛과 금빛 입자로 화면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만남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물질과 빛으로 변해 여성의 몸을 향해 내려오는 장면이다.

손을 보면 몸의 긴장이 더 잘 보인다

티치아노 작 다나에 그림 중 손
부드럽게 휘어진 다나에 손

얼굴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와 손을 본다.

다나에의 한쪽 팔은 몸 가까이에 놓이고, 다른 팔은 침대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손가락은 무엇인가를 꽉 움켜쥐지 않는다.

이 느슨함이 중요하다.

몸 전체가 어떤 행동을 시작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이미 누워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보이기 때문이다.

티치아노는 손을 과장된 몸짓의 중심으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손에서 팔, 어깨로 올라가면 몸의 힘이 빠져 있다는 느낌이 이어진다. 

강하게 뻗은 직선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선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이 곡선은 허리와 다리에서도 반복된다.

결국 다나에의 몸 전체가 하나의 느린 흐름을 만든다.

흰 시트와 붉은 천을 함께 본다

다나에의 피부만 바라보다가 침대를 보면 색의 관계가 훨씬 분명해진다.

몸 아래에는 밝은 시트가 넓게 깔려 있다. 흰색이라고 해도 한 가지 흰색이 아니다. 

어떤 곳은 차갑게 밝고, 어떤 곳은 회색과 베이지색이 섞인다.

주름이 깊어지는 부분에는 갑자기 어두운 색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시트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몸의 무게를 받아내는 물질처럼 보인다.

다나에의 피부와 흰 천은 밝기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질감은 다르다.

피부는 둥글고 매끈하게 이어지고, 시트는 접히고 꺾이며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다.

그 둘을 나란히 놓으면서 티치아노는 살과 천을 동시에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

주변의 붉은색 계열 천도 눈에 남는다.

붉은색은 다나에의 따뜻한 살빛과 연결되면서도 피부보다 훨씬 짙다. 

그래서 인물의 밝은 몸을 감싸는 색채의 틀이 된다.

이 그림에서는 색 자체가 윤곽선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몸 주위에 검은 선을 그어 구별하는 대신 

밝은 살빛, 흰 천, 붉은 천, 어두운 배경을 서로 맞붙여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제 화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다나에만 보고 있으면 이 그림은 전형적인 누드화처럼 보인다.

그런데 오른쪽의 늙은 여인을 보는 순간 그림의 성격이 달라진다.

두 사람의 차이는 너무 크다.

다나에는 거의 누워 있다. 늙은 여인은 몸을 일으킨 채 앞으로 움직인다.

다나에의 몸은 밝다. 늙은 여인의 몸과 옷은 훨씬 어둡다.

다나에는 거의 벗은 상태다. 늙은 여인은 옷에 싸여 있다.

다나에의 피부는 부드럽고 매끈하게 표현된다. 늙은 여인의 얼굴과 손에는 시간의 흔적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이 대비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관람자는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면서 젊음과 늙음, 

벌거벗은 몸과 옷 입은 몸, 누운 자세와 움직이는 자세를 계속 비교하게 된다.

다른 다나에 연작에서도 티치아노는 이 늙은 시중 여인을 사용했고, 

프라도의 작품은 그 대조가 특히 강하게 느껴지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늙은 여인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티치아노 작 다나에 중 늙은 여인
늙은 여인의 구도를 살펴보자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여인이 같은 황금비를 전혀 다르게 대한다는 점이다.

다나에는 황금빛이 내려오는 쪽을 얼굴로 바라본다.

반면 늙은 여인은 황금빛을 받아내는 행동에 집중한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천이나 그릇처럼 보이는 것을 내밀어 떨어지는 금빛을 받으려 한다. 

프라도의 작품 설명에서도 이 늙은 여인이 황금비를 받아내는 인물로 등장한다.

여기서 관람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다나에를 보면 황금비는 신비로운 빛처럼 느껴진다.

늙은 여인을 보면 그것은 실제로 떨어지는 금, 즉 물질처럼 보인다.

같은 황금비가 한쪽에서는 감각적인 경험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붙잡아야 할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이 그림을 단순히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해 

다나에를 찾아온 장면’이라고만 보면 화면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티치아노는 신화를 설명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인간의 반응을 옆에 붙여 놓았다.

황금비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제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화면 위쪽을 본다.

황금빛은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짙고 불분명한 구름 같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금빛 입자들은 한 줄로 가지런히 떨어지지도 않는다. 밝은 점과 작은 덩어리들이 불규칙하게 흩어지며 아래로 쏟아진다.

여기에는 아주 강한 색채 대비가 생긴다.

주변은 갈색과 회색, 검은색에 가까운 어둠인데 그 안에서 노란빛과 황금빛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래서 실제 금속처럼 반짝이는 느낌이 난다.

이 황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화면의 시선을 움직이는 축이다.

먼저 다나에의 밝은 몸을 보고, 얼굴을 따라 오른쪽 위로 이동하면 황금비에 닿는다. 다시 그 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늙은 여인의 손으로 연결된다.

한 번의 시선 이동으로 세 요소가 이어진다.

다나에, 황금비, 늙은 여인.

티치아노는 이야기를 말로 설명하지 않고 시선의 이동으로 조직한다.

작은 개도 놓치기 쉽다

실상 놓치기 쉬운 작은 개
필자도 항상 놓치는 작은 개

다나에 가까이에는 작은 개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다.

작품 전체를 멀리서 보면 인물과 황금비에 

먼저 눈이 가기 때문에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프라도판을 다른 《다나에》들과 비교할 때 

자주 언급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작은 개다.

개는 이 신화적 사건을 극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침대 가까이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이 작은 동물이 들어오면서 장면에는 이상할 정도로 일상적인 분위기가 섞인다.

한쪽에서는 신이 황금비가 되어 내려오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침실에서 볼 법한 작은 동물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

신화와 현실이 같은 침대 위에서 겹친다.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이런 현실적인 물건과 생명체는 

장면을 멀고 추상적인 고대 신화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관람자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처럼 끌어당긴다.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삼각형이 보인다

작품에서 몇 걸음 물러나 전체를 다시 본다.

왼쪽의 다나에는 거의 수평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오른쪽의 늙은 여인은 몸을 세우고 앞으로 숙인다.

그리고 위쪽에서 황금비가 사선으로 내려온다.

이 서로 다른 방향이 화면에 긴장을 만든다.

다나에의 몸은 느리고 안정적이다.

황금비와 늙은 여인의 움직임은 빠르다.

정지와 움직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셈이다.

특히 다나에의 무릎이 올라가는 선과 늙은 여인의 상체가 

기울어지는 선을 함께 보면 두 인물이 서로 마주 보는 구조가 훨씬 분명해진다.

두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바로 그곳을 황금빛이 채운다.

인물 사이의 공간 자체가 사건의 장소가 된다.

가까이 가면 붓질이 달라진다

티치아노의 후기 작품을 실제로 볼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 그림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이다.

조금 떨어지면 피부와 천, 구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 표면이 훨씬 거칠고 자유롭다.

특히 침대의 천과 주변의 어두운 부분에서는 붓질이 

모든 형태를 세밀한 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짧고 빠른 터치들이 서로 겹치면서 주름과 질감을 만든다.

프라도의 이 《다나에》는 1560~1565년 무렵 제작된 작품으로 보며, 

화면에서도 티치아노 후기의 한층 느슨해진 붓질이 확인된다.

다나에의 피부도 가까이에서 보면 유리처럼 

완벽하게 매끈하게 칠한 것이 아니다.

밝은 색과 붉은색, 갈색이 겹쳐 있다.

그런데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면 그 복잡한 붓자국이 하나의 살아 있는 피부로 합쳐진다.

이것이 티치아노 그림을 사진으로만 볼 때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형태를 선으로 먼저 만들고 색을 채운 것이 아니라, 

색을 쌓아가면서 형태가 생겨난 듯한 느낌이 강하다.

빛은 다나에에게 머물고 어둠은 오른쪽에 쌓인다

마지막으로 화면 전체의 밝기를 한 번에 본다.

가장 넓고 밝은 면은 다나에의 몸이다.

그 주변의 침대와 시트도 밝지만 몸보다 시선이 먼저 가지는 않는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화면은 짙어진다.

늙은 여인의 옷과 배경, 구름이 어둡게 겹친다.

그 어둠 한가운데 다시 황금빛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그림의 밝기는 단순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어두워지는 구조가 아니다.

밝은 다나에에서 시작해 어둠으로 들어갔다가 황금빛으로 다시 살아난다.

이 밝고 어두운 면들의 반복 때문에 시선은 한쪽에 머물지 않는다.

다나에를 보고, 황금비를 보고, 늙은 여인을 본 뒤 다시 다나에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 순환이 계속된다.

결국 프라도의 《다나에》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신화의 줄거리만이 아니다.

젊은 몸과 늙은 몸, 피부와 천, 밝음과 어둠, 정지와 움직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황금빛이 서로 충돌하고 이어지는 방식이다.

그림 앞에서는 마지막으로 황금비만 한 번 보지 말고 

그 빛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떨어지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면 좋다.

그 선을 따라가면 다나에의 얼굴을 지나 몸으로 내려가고, 

다시 오른쪽 늙은 여인의 손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그 순간 이 그림은 누워 있는 여인을 그린 한 장의 신화화가 아니라, 

빛 하나가 화면 전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그림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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