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37편 리베라 《야곱의 꿈》,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들

 그림 앞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처음 전체를 바라볼 때는 그저 나무 아래 잠든 남자가 먼저 보입니다.

하지만 얼굴을 보고, 손을 보고, 옷의 주름을 보고, 다시 나무와 하늘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이 그림이 생각보다 훨씬 치밀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리베라가 ‘꿈’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우리가 꿈의 존재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야곱의 얼굴, 성인이 아니라 지친 여행자처럼 보입니다


감긴 눈과 손에 기댄 얼굴에서는 계시의 황홀경보다 깊은 잠에 빠진 여행자의 모습이 먼저 느껴집니다.
잠든 야곱 얼굴

먼저 야곱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 속 중요한 인물을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 흔히 경건하고 이상화된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리베라의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염이 난 얼굴은 자연스럽고, 눈은 완전히 감겨 있습니다. 얼굴에는 어떤 극적인 표정도 없습니다.

계시를 받는 순간이라고 해서 놀라거나 황홀해하는 모습도 아닙니다.

그냥 깊이 잠든 사람처럼 보입니다.

바로 이 점이 리베라답습니다.

리베라는 성경 속 인물을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로 만드는 대신, 우리가 길에서 만날 법한 인간의 모습으로 끌어내리는 데 뛰어났습니다.

《성 안드레아》에서도 늙고 거친 피부와 주름을 숨기지 않았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야곱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먼저 보고 성경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남자가 엄청난 계시를 받고 있다고 쉽게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웅크린 몸에서 여행자의 피로가 느껴집니다


야곱의 몸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몸을 편안하게 쭉 뻗고 자는 자세가 아닙니다.

땅에 몸을 기대고 약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습니다.

침대도 없고 푹신한 베개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야곱은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리베라는 이를 설명하는 글이나 화려한 소품을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디서든 몸을 누이고 잠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 자세 하나만으로도 야곱이 궁전이나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길 위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몸의 무게가 땅으로 가라앉아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리베라는 야곱이 실제로 그곳에 누워 있는 것처럼 육체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손을 보면 잠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손을 보겠습니다.

야곱의 손에는 특별한 상징물이 들려 있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지도 않았습니다.

손 역시 몸과 함께 힘을 잃고 쉬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외로 중요합니다.

리베라가 그리고 싶은 것은 야곱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순간 찾아온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얼굴도 잠들어 있고 몸도 쉬고 있으며 손에서도 긴장이 사라졌습니다.

야곱은 지금 기적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인간에게 놀라운 일이 찾아옵니다.


거친 옷은 야곱을 더욱 현실적인 인간으로 만듭니다


두껍고 거친 옷의 주름과 웅크린 자세는 길 위에서 지쳐 잠든 야곱의 육체적인 무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야곱의 옷과 자세

야곱의 옷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려한 비단이나 장식이 없습니다.

옷감은 두껍고 무거워 보이며 주름 역시 상당히 현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리베라는 옷의 주름을 단순한 장식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빛이 옷 위에 닿으면서 밝아지는 부분과 그 아래 어두워지는 부분을 이용해 야곱의 몸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냅니다.

덕분에 우리는 평면의 그림을 보고 있는데도 그 아래에 실제 사람의 몸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역시 리베라가 성경의 세계를 현실 세계로 끌어오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야곱은 영웅처럼 꾸며진 사람이 아닙니다.

먼 길을 걸어온 한 여행자입니다.


왼쪽의 커다란 나무는 왜 이렇게 눈에 띌까요?


거칠게 뻗은 나무는 잠든 야곱이 있는 땅에서 밝은 하늘 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끕니다.
야곱의 꿈 나무

이제 야곱에게서 시선을 조금 옮겨 왼쪽의 나무를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배경처럼 지나치기 쉽지만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줄기는 굵고 거칠며 화면 위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야곱의 몸이 땅을 따라 낮게 놓여 있다면 나무는 반대로 위쪽으로 시선을 끌어올립니다.

그래서 화면에는 자연스럽게 두 방향이 생깁니다.

아래에는 잠든 인간이 있고, 위에는 나무와 하늘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무를 성경에 등장하는 사다리의 대체물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 자체에서 그런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구도상 이 나무가 땅에 누운 야곱과 위쪽의 하늘을 시각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거칠게 갈라진 나무껍질 역시 리베라 특유의 현실적인 표현을 보여줍니다.

인물의 피부와 옷뿐 아니라 자연도 매끈하게 이상화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전경과 멀리 열린 풍경


야곱 주변은 상당히 어둡습니다.

특히 그의 몸과 가까운 땅, 바위와 나무 주변에는 짙은 갈색과 어두운 색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 멀리 보내면 공간이 열립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야곱이 누워 있는 곳은 무겁고 현실적입니다.

반면 멀리 있는 풍경과 하늘 쪽으로 갈수록 공간이 넓어지고 공기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도 자연스럽게 이동합니다.

야곱에서 시작해 나무를 지나고, 어두운 땅에서 밝은 하늘 쪽으로 올라갑니다.

리베라는 화면을 복잡한 인물들로 채우지 않고 공간의 밝기와 방향만으로 우리의 시선을 움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의 희미한 빛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 작품의 핵심이 드러납니다.

성경의 야곱 이야기는 굉장히 극적입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 장면이라면 화가는 얼마든지 화면을 천사와 강렬한 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리베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밝아지는 부분이 있지만 그 빛은 화면 전체를 압도할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 주변의 어둠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미묘한 변화 때문에 평범한 풍경이 조금씩 현실과 다른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리베라는 우리에게 “여기가 기적입니다”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합니다.


리베라는 왜 꿈을 직접 그리지 않았을까요?


이 그림을 자세히 보고 나면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남습니다.

어떻게 잠든 사람 한 명만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의 꿈을 생각하게 만들었을까요?

그 답은 그림 전체의 대비에 있습니다.

야곱의 육체는 무겁습니다.

땅은 거칠고 어둡습니다.

옷도 현실적이고 나무도 거칩니다.

그런데 화면 위쪽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현실과 꿈 사이에 선을 그어놓은 것도 아닙니다.

두 세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어쩌면 이것이 리베라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기적은 언제나 번쩍이는 빛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지쳐 길가에서 잠든 아주 평범한 순간에도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다시 그림 전체를 보면 처음과 다르게 보입니다


이제 다시 몇 걸음 물러나 그림 전체를 바라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아래에서 잠든 남자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세부를 하나씩 살펴본 뒤에는 조금 달라집니다.

감긴 눈과 힘이 빠진 손에서는 깊은 잠이 보이고, 웅크린 몸과 거친 옷에서는 여행의 피로가 느껴집니다.

왼쪽의 나무는 땅에서 하늘로 시선을 끌어올리고, 어두운 전경 너머로 열린 공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조용히 밝아지는 하늘을 발견하게 됩니다.

리베라는 꿈속 광경을 화려하게 펼쳐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잠든 야곱과 함께 그 보이지 않는 꿈을 상상하게 됩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만난다면 야곱의 얼굴만 보고 지나가지 마세요.


얼굴 → 손 → 몸과 옷 → 왼쪽 나무 → 멀리 보이는 풍경 → 하늘의 밝은 부분


리베라는 화려한 기적 대신 길 위에서 깊이 잠든 야곱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리베라작  [야곱의 꿈]

이 순서로 천천히 시선을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보고 나면 《야곱의 꿈》은 단순히 ‘잠든 남자를 그린 어두운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리베라는 가장 평범한 잠의 순간 속에, 눈으로는 완전히 볼 수 없는 기적을 숨겨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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