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명작산책 53편 벨라스케스 《시녀들》 세부 감상, 그림을 보는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52편에서는 《시녀들》이 태어난 1656년의 스페인 왕실과 벨라스케스의 위치를 살펴봤다.

이제 그 이야기는 잠시 내려놓자.

이번에는 프라도 미술관 12번 방에서 실제 《시녀들》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그림만 바라본다.

이 작품을 볼 때 처음부터 거울의 비밀을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먼저 한 걸음 물러나 화면 전체를 보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보자.


그림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방’이다


Las_Meninas


《시녀들》은 세로 320.3cm, 가로 279.1cm다.

실제로 작품 앞에 서면 책이나 휴대전화에서 보던 

그림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인물들이 작은 초상화 속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존재로 눈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렇게 큰 그림인데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높은 천장과 넓은 벽이 펼쳐져 있고, 

그 위쪽에는 상당한 크기의 어둡고 비어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

이 빈 공간 때문에 우리는 사람 몇 명을 그린 초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방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방은 앞에서 뒤로 길게 이어진다.

프라도 미술관도 이 작품의 공간감이 선원근법뿐 아니라 

공기원근법과 여러 방향의 빛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멀어질수록 형태가 조금씩 흐려지고 어둠 속에 잠기면서 

공간이 실제 공기로 채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그 방 안으로 눈을 옮겨보자.


가장 먼저 빛나는 사람, 마르가리타 공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화면 중앙의 어린아이에게 먼저 눈이 갈 것이다.

마르가리타 공주다.

그 이유는 단순히 중앙에 서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주의 밝은 얼굴과 금빛 머리카락, 넓게 펼쳐진 밝은 드레스가 

주변의 어두운 공간과 강한 차이를 만든다.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공주에게 집중적으로 닿는다. 

프라도의 작품 해설에서도 화면 오른쪽 창에서 

들어오는 측면의 빛이 마르가리타 공주를 강하게 비춘다고 설명한다.

가까이 보면 드레스는 단순한 흰색이 아니다.

은빛과 회백색, 크림빛에 가까운 밝은 색들이 섞여 있고 

붉은색 장식이 곳곳에 들어간다. 

벨라스케스는 천의 모든 무늬와 주름을 선명한 선으로 

하나하나 그리기보다 밝고 어두운 붓질을 겹쳐 

천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느낌을 만든다.

멀리서 보면 놀랄 만큼 화려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형태를 만드는 붓질이 생각보다 자유롭다.

벨라스케스 그림을 실제 미술관에서 볼 때 느끼는 재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까이에서는 물감이고, 몇 걸음 물러나면 옷과 빛이 된다.

시녀들 마르가리타 공주와 두 시녀

공주 옆의 두 사람이 바로 ‘시녀들’이다


이제 공주의 양옆을 보자.

왼쪽에서 몸을 낮추고 있는 여성이 마리아 아구스티나 사르미엔토다.

그녀는 작은 쟁반 위에 붉은빛을 띤 작은 용기, 

부카로를 올려 공주에게 건넨다. 

프라도 자료에서도 이 장면을 마리아 아구스티나가 공주에게 

부카로에 담긴 물을 건네는 모습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손을 유심히 보면 좋다.

그녀의 몸과 팔은 모두 공주를 향한다.

시선도 공주에게 집중되어 있다.

반대편에는 또 한 명의 시녀 이사벨 데 벨라스코가 있다.

그녀 역시 공주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두 시녀의 자세가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이 재미있다.

한 사람은 몸을 낮춰 무엇인가를 건네고 있고, 

다른 사람은 일어서면서 몸을 살짝 굽힌 듯한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마르가리타 공주는 정지해 있지만 

주변에서는 작은 움직임이 계속 발생한다.

《시녀들》이라는 제목 때문에 

시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먼저 공주를 보고 나서야 우리는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누구인지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가면 궁정의 분위기가 갑자기 풀어진다.


시녀들 궁정 인물들과 개


이제 시선을 조금 더 오른쪽으로 옮겨보자.

두 사람이 더 나타난다.

마리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다.

그들 역시 실제 왕실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이며 

프라도 미술관은 화면 속 인물들을 이 이름으로 확인하고 있다.

마리바르볼라는 거의 정면을 바라본다.

작은 체구지만 자세는 단단하다.

특히 그녀의 얼굴과 시선은 화면 밖을 향하는 듯해서 

관람객의 시선과 쉽게 마주친다.

그 옆의 니콜라시토는 전혀 다르다.

그는 화면 오른쪽 아래에 누워 있는 

커다란 마스티프에게 발을 대고 있다. 

프라도는 이 행동을 개를 자극하거나 귀찮게 하는 모습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개를 보자.

이 커다란 동물은 화면에서 가장 앞쪽에 있으면서도 가장 느긋하다.

사람들은 서 있고, 몸을 숙이고, 무엇인가를 건네고, 

바라보고 있는데 개는 바닥에 길게 몸을 내려놓고 있다.

니콜라시토의 발이 닿는 순간에도 금방 벌떡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이 작은 행동 하나가 그림에 묘한 시간을 만들어낸다.

조금 뒤에는 개가 움직일지도 모른다.

공주가 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시녀가 몸을 다시 세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벨라스케스는 사람들이 줄을 맞춰 서 있는 

기념사진 같은 순간을 그린 것이 아니다.

무언가가 막 일어나고 있는 도중의 순간을 붙잡았다.


이제 왼쪽의 벨라스케스를 보자


시녀들 벨라스케스와 캔버스


공주에게서 시선을 떼어 화면 왼쪽으로 크게 이동하면 거대한 캔버스가 나타난다.

그 앞에 벨라스케스 자신이 서 있다.

한 손에는 팔레트가 있고 다른 손에는 붓이 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볼 수 없다.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캔버스의 앞면이 아니라 뒷면이다.

이 거대한 갈색 면은 화면 왼쪽 상당 부분을 막아버린다.

아주 영리한 장치다.

그림 속에 또 하나의 그림이 존재하지만 그 그림을 볼 수 없게 해놓았다.

그러니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거지?’

더 재미있는 것은 벨라스케스의 얼굴이다.

그는 자신의 캔버스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

붓질을 잠시 멈춘 듯한 자세로 화면 밖을 바라본다.

바로 우리가 서 있는 방향이다.

이 순간부터 관람객은 편안하게 그림만 구경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벨라스케스를 보고 있는데 벨라스케스도 이쪽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앞쪽 인물들에 눈을 빼앗기면 놓치기 쉬운 사람들이 있다.

마르가리타와 오른쪽 인물들의 뒤, 어두운 중간 공간을 보자.

두 사람이 서 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은 마르셀라 데 우요아이고, 

그 옆에는 신원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남성 궁정 수행원이 있다. 

프라도 공식 설명에서도 두 사람을 마르셀라 데 우요아와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guardadamas로 구분한다.

이들은 앞쪽 인물들보다 훨씬 어둡다.

얼굴도 선명하게 강조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면에는 자연스럽게 층이 생긴다.

공주와 시녀들이 있는 밝은 전경.

그 뒤의 어두운 중경.

그리고 훨씬 멀리 있는 뒷벽과 문.

인물을 크게 그리고 작게 그리는 것만으로 깊이를 만든 것이 아니다.

빛의 양 자체가 앞과 뒤를 나누고 있다.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강한 빛이 들어온다


시녀들 열린 문과 호세 니에토


이제 그림의 거의 끝까지 들어가 보자.

뒷벽 오른쪽에 문이 열려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림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이곳이 아주 밝다.

문 앞에는 한 남자가 계단에 서 있다.

호세 니에토다.

그의 한쪽 다리는 계단에 있고 몸은 잠시 멈춘 듯하다.

들어오고 있는 것인지, 나가려는 것인지 한눈에 결정하기 어렵다. 

프라도의 해설 역시 그가 긴 방 끝에서 문을 열거나 닫는 모습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잠깐 사람을 보지 말고 문 자체를 보자.

밝은 직사각형 하나가 어두운 방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이 작은 밝음 때문에 공간이 갑자기 멀어진다.

우리 눈은 마르가리타 공주가 있는 앞쪽에서 

어두운 방을 통과해 호세 니에토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끌려간다.

그리고 그의 뒤에도 공간이 더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은 평평한 캔버스인데 눈은 그 안으로 계속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거울을 발견한다


시녀들 거울 속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


호세 니에토를 보았다면 이제 시선을 아주 조금 왼쪽으로 옮겨보자.

뒷벽에 작은 사각형 하나가 있다.

처음에는 주변에 걸린 그림 가운데 하나처럼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펠리페 4세와 왕비 마리아나 데 아우스트리아다.

프라도 미술관도 이 두 인물이 뒤쪽 거울에 비친 국왕과 왕비라고 확인한다.

여기서 《시녀들》 전체가 갑자기 어려워진다.

거울이라면 무엇인가를 반사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왕과 왕비는 어디에 있는가?

그림 안에는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이 없다.

거울 속에만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 가운데 하나는 국왕 부부가 화면 바깥, 

즉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향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것이 연결된다.

벨라스케스가 바라보는 방향도 이쪽이다.

마르가리타와 몇몇 인물의 시선 역시 화면 밖으로 향한다.

거울에는 국왕 부부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왕과 왕비가 있었을 법한 방향에서 이 방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너무 빨리 정답을 만들지는 말자.

거울이 정확히 어떤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반사하는지, 

벨라스케스의 보이지 않는 캔버스에는 무엇이 그려지고 있는지를 

두고는 오랫동안 여러 해석이 이어져 왔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벨라스케스가 그림 바깥의 공간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림 속 사람들의 눈을 다시 따라가 보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인물들의 눈을 본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모두가 마르가리타 공주만 보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공주를 보고 있고, 누군가는 옆 사람을 향하며, 

또 누군가는 화면 밖을 바라보는 듯하다.

벨라스케스도 이쪽을 본다.

마리바르볼라의 시선도 강하게 바깥으로 향한다.

그래서 화면 밖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존재를 국왕과 왕비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잠시 그들의 위치를 빌려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단순히 오늘날의 관람객이라고 생각하면 더 묘해진다.

1656년에 그려진 사람들이 370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 

지금 프라도 미술관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 작품 앞에서 훨씬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화면의 크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작지 않다.

그들의 공간이 우리 공간과 거의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빛은 공주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녀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체적으로 보자.

이번에는 사람 대신 빛만 따라가면 좋다.

가장 먼저 공주의 밝은 드레스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과 옷에도 빛이 걸린다.

그 뒤로 가면 방은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그러다가 가장 깊은 곳의 열린 문에서 다시 강한 빛이 나타난다.

그리고 뒷벽의 작은 거울에도 희미한 밝음이 살아 있다.

밝음과 어둠이 단순히 앞에서 뒤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밝음, 어둠, 다시 밝음이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의 눈도 그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공주에게 갔다가 주변 사람에게 간다.

다시 벨라스케스에게 간다.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열린 문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울에서 멈춘다.

그런데 거울을 보는 순간 다시 화면 밖의 우리 쪽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림 안으로 들어갔던 시선이 결국 그림 밖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시녀들》은 결국 나까지 그림에 끌어들인다


처음 《시녀들》을 보면 중앙의 어린 공주가 가장 중요해 보인다.

조금 더 보면 벨라스케스가 눈에 들어온다.

더 뒤를 보면 문 앞의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울 속 국왕과 왕비를 찾는다.

그때 비로소 이상한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바로 이 질문 때문에 《시녀들》은 오래 보게 되는 그림이다.

벨라스케스는 화면 안에 있는 사람들만 그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화면 밖의 공간까지 작품의 일부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화가는 우리 쪽을 바라본다.

거울은 우리 쪽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국왕과 왕비를 끌어들인다.

여러 인물의 시선은 화면의 경계를 넘어온다.

그래서 관람객은 어느 순간 단순한 구경꾼으로 남아 있기 어려워진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 작품 앞에 선다면 거울부터 찾지 말고 조금 천천히 봤으면 한다.

먼저 마르가리타의 밝은 드레스를 본다.

두 시녀의 몸과 손을 따라간다.

오른쪽의 마리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바닥의 커다란 개를 본다.

왼쪽으로 돌아가 붓을 든 벨라스케스와 보이지 않는 캔버스를 본다.

그다음 어두운 방 깊숙이 들어가 호세 니에토가 서 있는 밝은 문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그 옆의 작은 거울을 본다.

그리고 거울 속 두 사람을 확인한 뒤에는 

그림을 보지 말고 잠깐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 그림 밖에 서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본다.

왕과 왕비도 이쪽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진다.

벨라스케스의 보이지 않는 캔버스도 이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시녀들》 앞에서는 결국 이런 질문을 만나게 된다.

내가 이 그림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그림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1656년 마드리드 왕궁의 방과 

오늘날 프라도 미술관의 전시실 사이에 놓여 있던 

수백 년의 시간이 잠시 사라진다.

그것이 《시녀들》을 

실제 작품 앞에서 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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