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편에서는 틴토레토가 살았던 16세기 베네치아와 당시의 미술, 그리고 《발 씻김》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제 그림 앞으로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발 씻김》은 처음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가로 5m가 넘는 거대한 그림인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사건이 한가운데에서 벌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넓은 공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식탁이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른쪽 끝을 봐야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는 몸을 낮추고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고 있습니다.
왜 틴토레토는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을 이렇게 구석으로 보내버렸을까요?
이 질문부터 시작하면 《발 씻김》의 독특한 구도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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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틴토레토작 [발 씻김] |
예수와 베드로는 왜 오른쪽 끝에 있을까?
르네상스 종교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먼저 이상하게 느낄 만한 부분입니다.
보통 가장 중요한 인물을 화면 중심에 놓습니다.
그런데 틴토레토는 예수와 베드로를 오른쪽으로 밀어놓았습니다.
실수도 아니고 단순히 특이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이 그림이 원래 걸렸던 장소와 관계가 있습니다.
《발 씻김》은 베네치아 산 마르쿠올라 교회 성소의 오른쪽 벽에 걸리도록 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신자들은 지금 프라도에서처럼 그림의 정중앙에 서서 감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림을 비스듬한 방향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틴토레토는 바로 그 위치를 계산했습니다.
예수와 베드로를 화면 오른쪽에 배치하면 교회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신자들에게 이 두 사람이 훨씬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림을 어디에 걸 것인지까지 생각해서 구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프라도에서 정면으로 보면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구도가 원래 장소에서는 훨씬 자연스러웠습니다.
몸을 낮춘 예수와 당황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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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와 베드로 |
이제 오른쪽의 두 사람을 가까이 보겠습니다.
예수는 서 있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발 앞까지 몸을 낮추었습니다.
베드로는 앉아서 한쪽 발을 예수 쪽으로 내밀고 있습니다.
이 작은 동작 안에 이 작품의 주제가 거의 모두 들어 있습니다.
스승이 제자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틴토레토는 예수를 왕처럼 높은 곳에 올려놓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왕좌도 없습니다.
몸을 낮추는 행동 자체가 예수가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베드로에게는 이 상황이 편할 리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베드로는 예수가 자신의 발을 씻는 것을 처음에는 거부합니다.
틴토레토는 바로 그 두 사람의 관계를 화면 한쪽에서 보여줍니다.
거대한 그림 속에서 벌어지는 행동은 의외로 작고 조용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행동이 그림 전체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왜 이렇게 부산할까?
이제 예수와 베드로에게서 시선을 왼쪽으로 옮겨보겠습니다.
그림 속 제자들은 모두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앉아 있고 누군가는 몸을 숙이고 있습니다.
발을 씻기 위해 신발이나 옷을 정리하는 듯한 인물들도 보입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산만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장면 덕분에 그림에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생활감이 생깁니다.
성경 속 인물들이 기념사진을 찍듯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다음에 벌어질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한순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공간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틴토레토 그림의 재미입니다.
그는 성경 이야기를 멈춰 있는 장면으로 만들기보다 실제 사람들이 움직이는 연극처럼 보여줍니다.
가운데 식탁은 왜 이렇게 크게 보일까?
그림의 중앙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작품의 주제는 발 씻김인데 식탁이 상당히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 식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닙니다.
우리의 눈을 움직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예수와 베드로에서 시작한 시선이 식탁을 따라 화면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식탁 주변의 제자들을 지나 더 먼 곳으로 이어집니다.
틴토레토는 사람을 차례로 늘어놓아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식탁, 건축물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제대로 보면 눈이 한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꾸 그림 안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림 한가운데가 비어 보이는 이유
정면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또 하나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가운데 공간이 꽤 넓습니다.
5m가 넘는 캔버스라면 인물들을 훨씬 촘촘하게 배치할 수도 있었을 텐데 틴토레토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공간 때문에 인물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비밀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정면보다 오른쪽에서 바라볼 때 원래 구도가 더 잘 드러납니다.
오른쪽으로 이동해 그림을 바라보면 정면에서 넓어 보였던 빈 공간이 시각적으로 줄어듭니다.
흩어져 보였던 인물들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예수와 베드로에서 출발해 식탁과 제자들을 지나 화면 깊숙한 곳까지 하나의 대각선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면에서 느끼는 ‘빈 공간’은 틴토레토가 구도를 잘못 만든 결과가 아닙니다.
원래 그림을 바라보게 될 위치까지 계산한 결과입니다.
시선을 끝까지 따라가면 아치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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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씻김 원근법 |
그 대각선을 계속 따라가 보겠습니다.
예수와 베드로에서 출발합니다.
식탁을 지나갑니다.
제자들을 지나 더 멀리 들어갑니다.
그러면 화면 깊숙한 곳에 건축물과 아치가 보입니다.
바로 그 아치 쪽이 이 작품의 실제 소실점입니다.
그래서 《발 씻김》의 공간은 단순히 뒤쪽으로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을 특정한 지점으로 끌고 갑니다.
이런 원근법 때문에 평평한 캔버스인데도 그 뒤로 공간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틴토레토가 이 공간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도 아닙니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이자 건축 이론가였던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가 1545년에 출판한 원근법 책에 등장하는 무대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발 씻김》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이라기보다 거대한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멀리 보이는 운하는 베네치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소실점 주변을 자세히 보면 그림의 공간은 실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깥 풍경까지 이어집니다.
그곳에는 운하와 건축물이 보입니다.
성경 속 사건의 무대는 예루살렘이지만 틴토레토의 그림 속 공간에서는 자신이 살았던 베네치아를 연상시키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16세기 화가들에게 성경 이야기는 반드시 고대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고고학적으로 복원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관람객이 익숙하게 느끼는 건축과 풍경 속으로 성경 이야기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당시 베네치아의 신자들에게 이 장면은 먼 옛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이 사는 세계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뒤편에는 또 다른 성경 장면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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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만찬 |
이번에는 예수와 베드로 뒤쪽의 먼 공간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그곳에 또 하나의 장면이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입니다.
왜 발 씻김을 그린 그림 안에 최후의 만찬이 또 들어 있을까요?
두 사건이 시간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발 씻김은 최후의 만찬을 앞두고 벌어집니다.
틴토레토는 한 화면 안에 현재 벌어지는 사건과 곧 이어질 사건을 함께 넣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산 마르쿠올라 교회에는 틴토레토가 그린 《최후의 만찬》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림 속 작은 최후의 만찬은 성경 이야기의 다음 장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같은 교회에 존재했던 다른 작품과도 연결됩니다.
한 점의 그림만 보는 것과 원래 교회 공간 전체를 상상하면서 보는 것이 다른 이유입니다.
가까운 인물과 먼 풍경의 크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번에는 그림 속 사람들의 크기를 비교해보세요.
앞쪽 인물들은 상당히 큽니다.
반면 화면 안쪽으로 갈수록 사람과 건축물은 빠르게 작아집니다.
이 차이가 화면의 깊이를 더욱 크게 느끼게 합니다.
앞쪽 인물들은 마치 우리가 있는 공간까지 튀어나올 것 같고, 뒤쪽 풍경은 아주 멀리 밀려난 것처럼 보입니다.
틴토레토는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깊이는 전혀 없는 캔버스 위에 거대한 무대가 만들어집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원근법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원근법을 단순히 공간을 정확하게 그리는 방법으로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관람객의 시선을 움직이고 장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빛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색과 빛을 보겠습니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 화가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서도 색과 빛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화면 전체가 똑같이 밝지는 않습니다.
밝은 옷과 흰 식탁보가 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그 주변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빛을 받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화면에 리듬을 만듭니다.
특히 흰 천은 단순한 흰색 덩어리로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의 어두운 색과 대비되면서 우리의 시선을 다시 화면 안쪽으로 끌어갑니다.
인물의 옷 역시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인데도 완전히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지지 않습니다.
틴토레토가 베네치아 회화의 색채 전통을 물려받았으면서도 그것을 훨씬 더 극적인 공간 속에서 사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면에서 한 번, 오른쪽에서 다시 한번
프라도에서 《발 씻김》을 직접 보게 된다면 이 작품은 반드시 위치를 바꿔가며 보고 싶습니다.
먼저 정면에서 전체를 바라봅니다.
예수와 베드로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고, 가운데에는 넓은 공간이 있으며 여러 인물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다음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다시 바라봅니다.
그러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예수와 베드로에서 시작된 시선이 식탁과 제자들을 지나 멀리 있는 아치까지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제각각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요소들이 하나의 방향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발 씻김》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미술관에서 보는 것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거의 정면에서 작품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틴토레토는 처음부터 정면에서만 보라고 만든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관람객이 서 있는 장소까지 작품의 일부였던 셈입니다.
다시 전체 그림을 보면 예수가 다르게 보입니다
이제 다시 몇 걸음 물러나 작품 전체를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왜 가장 중요한 예수가 한가운데 있지 않을까?
왜 사람들이 이렇게 흩어져 있을까?
왜 한가운데에 넓은 공간을 남겨두었을까?
그런데 그림을 하나씩 살펴보고 나면 이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는 오른쪽에서 베드로의 발 앞에 몸을 낮추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시선은 제자와 식탁을 지나 멀리 있는 아치까지 이어집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공간과 최후의 만찬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원래 이 그림이 걸려 있었던 산 마르쿠올라 교회의 공간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틴토레토는 단순히 성경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계산해 하나의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프라도에서 《발 씻김》을 만난다면 예수부터 찾아보고 끝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먼저 정면에서 전체를 보고,
오른쪽의 예수와 베드로를 찾고,
식탁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멀리 있는 아치까지 따라가 보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몸을 오른쪽으로 옮겨 다시 한번 그림을 바라보세요.
그때 처음에는 조금 산만하게 보였던 5m짜리 거대한 그림이 갑자기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5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발 씻김》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틴토레토는 그림 속 인물만 움직이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까지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